5년 기록을 시작하려고요
‘덕분’이라는 말이 좋다. ‘덕분’은 맞은편에 대한 존중과 환대의 말이다. 그래서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덕분에 은혜롭다. 나의 오늘은 그로 하여 따뜻해진다.
2020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여느 해와 달랐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어쩌면 늘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2019년이 75여 일쯤 남았을 때부터 블로그에 야금야금 기록하며 날을 세었다. 생각으로는 매일 기록하는 거였는데 잘 안되었다. 21일 남겨놓은 것을 끝으로 2019년을 마무리했다. 2019년이 저물어가던 날, 친구와 파주출판단지를 걷다 만난 다이어리 하나를 남겨둔 채로.
만만 해서였다. 한 손에 딱 잡히는 다이어리는. 매해 그랬듯 쓰다 말아도 요 정도면 그리 아까울 것도 없다, 쓰기도 전부터 지나온 날들을 후려쳤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 잘 사는 거 아닌가? 하루 한 줄 못 남기는 게 대수이랴. 그거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지난 메모를 살핀다. 몇 시, 어디, 해야 할 일들과 약속, 생일, 기일 같은 일정들이 건조하게 박혀있다. 한 일이 많을수록 잘 살아왔네, 한다. 한 일이 없는 빈칸들은 쉼푠가, 남의 일 보듯 무감하다.
little by little : everyday write diary. today was good day!라고 쓰인 만만 다이어리는 그렇게 2020년을 짊어진 일엽편주가 되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코로나라는 풍랑까지 만난 그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가보지 않고선 몰랐다. 드넓은 세상에 뜬 작고 가벼운 다이어리는 다행히 풍랑을 무사히 건넜다. 여행을 갈 때도, 며칠 집을 비울 때도 함께 갔다. 쓰다 지우기도, 머뭇거리기도, 생각이 나다 말기도, 날아가기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다음엔 욕심을 내었다. 한 해를 잘 남긴 기념으로 은박 두른 하드 커버 3년 다이어리를 산 것이다. 사람 마음이 이래서 믿을 게 못 된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를 보면 된다. 마음을 담을 집은 소박하고 작은 집이면 된다는 걸 알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3년 일기는 첫째, 무겁고 커서 들고 다닐 수 없었다. 둘째, 고급 양장이었는지 얌체같이 반질거렸다. 셋째, 채워야 할 3년 날들의 빈칸을 볼 때마다 뭔가 채우라는 요구처럼 느껴졌다. 처음 먹은 마음은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잘 되었으면 덕분에 좋았을 텐데 안되었으니 핑계만 늘었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하다못해 로또 당첨도 하루아침은 아니다. N잡러, 멀티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시간에 따른 경제적 요구가 중요해지는 시절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들에 가까이하려면 할수록 무언가로부터 멀어졌다. 여러 가지에 공평하게 일을 나눈다는 건 시간을 쪼개는 일이었다. 하나에 다른 하나를 보태는 건 온전한 하나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일이었다. 순서가 채 오기 전에 주름을 잡듯 다음을 겹치는 일은 내심 벅찼다.
잠시 숨을 고른다. 정말 원하는 게 뭘까. 시간이 흐를수록 굼떠지는 생각들. 어느새 삶의 방향이 달라지고 마는 건 호르몬의 이간질 때문일까. 호르몬의 이간질이더라도 처음부터는 아니다. 젊은 시절을 지나야 오는 것이다. 건너뛸 수는 없는 것이다. 하루아침은 그리 오지 않는다. 손가락 사이로 쌓이는 것이다. 흘러가기도 하고, 조금 남기도 하면서.
어떤 색이라도 섞을 기세이던 무렵은 지났다. 남기지 못하고 보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먼지 같은 생명도 수억 만 분의 하나를 점하는 가치로 산다. 자연에 살고, 땅에 살고, 하늘에 사는 생명이 하는 소리와 몸짓, 그 사이에 번지는 욕심과 연민, 후회, 슬픔과 그리움은 모두 순간을 산다. 그들을 쌓아 무엇을 하려는 의도는 없다. 적적積積한 덕분에 내가 어떤 삶을 꾸려가는지 느낌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순간에 감탄하는 사람이 되고, 하루라도 빛나는 날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이 고마운 그런 덕분네로 살고 싶다.
2020년부터 시작해 2024년 올해까지 이어지는 5년의 기록을 여기 옮긴다.
빈칸이 많은 채로도, 여전히 부끄러운 채로도 남길 하루의 짧은 생각이다. 할 수 있을 때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