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딱 아프기 쉬울 때야,

마음이 돋보기 같아지는 계절

지금이 딱 아프기 쉬울 때야, 친구와 얘길 한다. 아직 겨울 끝자락이 남아 사방이 마른 가지인데, 봄풀 일으키는 해가 따뜻해지려는 지금. 봄 마중하는 비가 토독토독 내리는 지금. 추운 건 아닌데 으슬으슬 한기가 어디선지 스며드는 지금. “멀리서 보면 죽어있는 것 같지, 가까이 가서 보면 싹 올라오는 중야.” 나는 말한다. 

    

이른 봄에 친구는 멀리 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를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고 있어서다. 오소소 바람이 분다. 아직 추운 몸 구부려 널 안아 봐. 봄 앞에서 흔들리는 생명이 보이게. 한기를 견뎌 살아 오른 가장 작은 힘을 봐. 가까이 가야 보이는 그들이 깨어난다는 건 새로 오는 계절을 반기는 몸의 신호니까 이제 머잖아 푸르게 번지고 멀리 물들이는 큰 힘이 될 거야.      

작은 것부터 깨어난다. 낮은 데부터 시작된다. 나직하게 작은 풀이 기특해 쪼그려 앉아 그들과 눈을 맞춘다. 어느새 망울 터뜨리는, 해 바른 곳 자리한 이들에게 코를 드니 향까지 그윽하다. 향을 내어 봄 꼬드길 줄 알았을까, 어디. 작고 큰, 높고 낮은 줄 모르는 이들이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그저 할 일을 하는.   

   

작은 나로 피어, 낮은 나로 피어 봐. 언감생심 향까지야 막부림 할까. 1월 말인가 장미 한 다발을 사 두고 보았다. 오래 볼 수 있다 했고, 다 마르고서도 예쁘다 했다. 과연 그대로 말라 시들어도 볼 만했다. 새 꽃이 올라오는 계절을 타느라 정리하려고 마른 장미를 빼 들었다. 바스러지도록 마른 몸이 가뿐하다. 코를 댄다. 아직 향이 난다!     

 

장미의 소임을 다한 이다. 두어 번 물을 가느라 만지고 난 후 관심이 멀어진 손길에 목이 말랐을 이다. 목을 늘인 채 마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간 무관심이 미안해지기 잠시, 품은 향이 날아갈까 조심스레 꽃을 따서 모은다. 과자 부서지듯 꽃잎이 떨어진다. 내게도 남길 것이 있다면 이렇게 말라갈까. 내게 남은 것도 이런 향을 낼 수 있을까. 마음 품으며 모은다.   

  

그냥 보내기 아쉬워 마련한 자리에 그의 향을 드리운다. 들고나는 바람결로 두더지 같은 봄 냄새를 맡겠지. 봄비에 젖은 땅이 피워 올리는 훈기에 제 향을 싣고 섞이느라 설레겠지. 방문을 열고 나오며 보이는 자리에서. 현관문 열고 드나드는 발길 오가는 자리에서. 한겨울 내게 온 이에게 새 계절의 안부를 전하는 마침 알맞은 자리에서.      

멀고 가까움은 내 마음에 있다. 지나온 날들이 멀어지는 마음과 그 마음을 바라보는 가까운 나. 먼 곳을 보는 눈과 가까운 곳을 보는 눈을 조율하듯 마음도 그렇게. 새 계절을 맞는 마음이 돋보기 같아지는 나를 바라본다. 지난 일, 있는 곳 흉보지 않는 이들이 계절 향을 품고 저마다 제 할 일을 한다. 이들을 탐하기에 낮은 시력과 심력이 마침 좋은 때를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