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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Aug 24. 2018

34.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민음사

읽은 기간: 2018.8.23

한 줄 댓글: 사춘기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호밀밭과 파수꾼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국적이고 동화적인 느낌 때문이다.


샐린저는 미국 작가로 다작을 한 작가는 아니다.

1919년생으로 1951년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발표하고 2010년에 노환으로 죽을 때까지 『호밀밭의 파수꾼』 외에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너무 유명해져서 대중의 기대가 큰 압박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글쓰기는 계속한 걸로 알려져 있다.


<작품 내용>

주인공 이름은 홀든 콜필드, 16살 사춘기 소년이다.

5과목 중 4과목에서 낙제점을 받고 퇴학당한다.

중요한 건 이번이 3번째 퇴학이다.

퇴학 사실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기까지 3일이라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 동안 학교를 빠져나와 가출을 한다.

이 작품은 3일 동안 홀든 콜필드가 겪는 내용이 주다.


홀든은 어른들을 싫어한다.

그들이 어른이랍시고 하는 충고를 싫어한다.

특히 어른들이 하는 인사인 '만나서 반갑다' '행운을 빈다'를 들으면 우울해진다.


홀든은 자아분열적이고 이중적인 아이다.

작품 초반에 스펜서 선생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스펜서 선생은 홀든이 퇴학당한 것을 두고 충고하기 시작한다.

홀든은 겉으로 경청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지루해하고 대화가 빨리 끝나길 원한다.

심지어 다른 생각을 한다.

'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통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25p)

그러면서 하는 생각이 공원 연못에 있는 오리 생각이다.

홀든은 겨울에 연못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한다.

이 오리는 홀든이 가출하고 지내는 3일 동안에도 계속 등장한다.

택시 운전사 2명에게도 물어본다.

한 명은 정신병자 취급하지만, 한 명은 거기 있는 물고기는 어떻게 되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홀든은 지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택시 운전사들에게 같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자고 하거나

창녀를 돈 주고 사서 성관계가 아닌 대화를 하려고 한다.

또 클럽에 들어가 나이 많은 여자들을 찾아가 대화를 건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좋지 않다.

대화가 시작조차 되지 못하거나 시작하더라도 홀든이 원하는 대화가 아니다.

결국 홀든은 우울해진다.

그래서 홀든은 죽은 남동생 앨리가 그립다.

앨리 대신 여동생 피비가 보고 싶다.

피비와 만나서 잠깐이라도 대화하면 우울함이 사라질 거라 생각한다.


나중에 피비와 만나 대화하며 홀든은 점차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깨닫게 된다.

자신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 자신은 계속 어린이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홀든이 이중적이고 자아분열적이 된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는 이미 성인이어서 담배와 술도 다 하지만, 사회 규범과 편견이 싫었다.

피비와 보내는 시간 속에서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으며 물 흐르듯 놔둬야 한다고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회전목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식으로 묘사되는지는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작품 특징>

1. 제목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이 3일 동안 방황하며 정한 장래희망이다. 낭떠러지에 있는 호밀밭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거다. 이런 장래희망을 정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길에서 어떤 아이를 봤는데, 이 아이는 불안하게 차도로 걷고 있었다. 이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가사는 이렇다.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 이걸 듣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로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홀든이 잘못 들었다는 것이다. 원래 가사는 이렇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다. 피비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원제에 Catcher(파수꾼)가 있는 것과 홀든이 그리워하는 남동생 앨리가 갖고 다니던 mitt(포수용 장갑) 사이에 어떤 관계가 홀든에게 이런 착각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mitt(포수용 장갑)는 meet(만나다)와 발음이 유사하다. 아이가 meet로 부른 것을 앨리를 생각하며 들은 홀든은 mitt로 착각해서 듣는다. 거기서 포수인 Catcher를 떠올리고 호밀밭의 파수꾼까지 나아간 것이 아닌가 싶다.

홀든이 앨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묘사하는 작가의 치밀함이 재미있다.


2. 이 작품은 홀든이 병원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얘기하는 형식이다.


<소개하고 싶은 구절>

「저∙∙∙∙∙∙ 그러니까, 인생은 운동 경기와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규칙에 따라서 시합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아주 좋게 대해주셨어요. 화를 내신다거나 때리지는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인생이란 시합과 같다는 말씀만 계속 하셨어요」
(…)
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축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18, 19p)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120, 121p)
지나치게 무언가를 잘한다면, 자신이 조심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더 이상은 잘한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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