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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Aug 31. 2018

36. 『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읽은 기간: 2018.8.29~30

한 줄 댓글: 나는 얼마나 이치에 맞게 이성에 맞게 행동하는가


독일계 미국인 작가인 커트 보니것의 반전(反戰) 소설이다.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 영국과 미국이 독일 드레스덴에 퍼부은 폭격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커트 보니것 자체가 드레스덴 폭격 당시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에 있었다.

폭격에서 운 좋게 살았고, 폭격이 있은지 24년 뒤인 1969년에 이 작품을 출간한다.


제목 「제5도살장」은 작품 속 주인공인 빌리 필그림이 드레스덴 폭격 당시 포로로 머물렀던 장소다.


작품은 액자식 구성이다.

액자에는 드레스덴 폭격에서 빌리 필그림과 같이 살아서 돌아온 작가가 등장한다.

이 작가가 커트 보니것 자신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액자 안, 본 내용에서 주인공은 빌리 필그림이라는 인물이다.


<작품 내용>

빌리 필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미국인 병사다.

그는 군종병으로 후방에 머물던 병사다.

그러다 룩셈부르크에 있는 보병 연대에서 군목 밑에 있던 군종병이 죽어서 보충역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막상 그가 갔을 때 보병 연대는 독일의 공격을 받고 박살이 난다.

생존자는 빌리를 포함해 4명이다.

그러나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포로로 잡힌다.

포로로 끌려가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독일 드레스덴 포로수용소다.

빌리가 머문 곳은 제5도살장이다.


작품 속에서 드레스덴은 폭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설명된다.

국제법으로 보호받는 비무장 도시에, 군수산업도 없고, 군사 병력이 특별히 많이 있지도 않기 때문이란다.

빌리 필그림은 처음 드레스덴을 보고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곳에 무차별 폭격이 벌어진다.

13만 명이 죽는다.

이렇다 할 병력이 모여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대부분 민간인이다.

도시는 초토화되고 달처럼 된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달이 아니라 달의 표면처럼 삭막해졌다는 뜻이다.

이 폭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은 빌리를 포함해서 7명이다.


전쟁이 끝난 뒤 빌리는 미국으로 돌아온다.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검안 학교에서 학업을 마친다.

검안 학교를 졸업한 후 검안 학교 설립자이자 소유자의 딸과 결혼한다.

장인의 도움으로 검안 사업을 하고 부자가 된다.


약 20여 년이 흐른 후 1967년에 빌리는 트랄파마도어인이라는 외계인에게 납치된다.

트랄파마도어인은 4차원을 인식하는 외계인이다.

그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는 영원히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특정 시간에 나쁜 상태에 처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빌리는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납치된 지 100만 분의 1초 만에 풀려난다.

트랄파마도어에서 몇 년을 있었지만 지구에서의 시간은 100만 분의 1초라는 것이 빌리의 주장이다.


그로부터 1년 뒤에 검안사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추락한다.

그때 부조종사와 빌리만 살아난다.

빌리는 뇌 수술을 받는다.

그때부터 빌리는 1967년에 트랄파마도어인들에게 납치됐던 일을 여러 언론을 통해 밝히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드레스덴 폭격에서 같이 살아남았던 포로 한 명에게 총을 맞고 죽는다.



<작품 특징>

    1. 위에서 줄거리를 시간의 흐름으로 설명했지만, 사실 작품은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이를테면 트랄파마도어식이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외계인인 트랄파마도어인들은 4차원을 인식하는 존재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과거나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나 미래의 존재 자체가 되는 것이다. 작품도 그런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빌리 필그림은 눈을 깜빡이며 시간여행을 한다. 드레스덴 폭격 전으로 갔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검안사 일을 할 때로 왔다가,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납치됐다가, 다시 드레스덴으로 갔다가, 포로로 잡히기 전으로 갔다가, 비행기 추락사고 때로 간다.

    작품은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술된다. 줄거리를 이렇게 정리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2. 작품에 보면 '뭐 그런 거지'라는 구절이 106번 나온다. 이 구절은 일정한 규칙을 갖고 나온다. 죽음을 이야기한 후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빌리와 부조종사만 빼고 모두 죽었다. 뭐 그런 거지'(196p) 죽음이 최소 106번 이상 등장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탄산이 빠진 샴페인을 보고 죽었다고 말하며 '뭐 그런 거지'라는 말이 나오고, 문학평론가들이 소설이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토론한다고 말하면서도 '뭐 그런 거지'라는 말이 나온다.

    죽음 뒤에 '뭐 그런 거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뭐 그런 거지'라는 말은 앞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길 때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커트 보니것은 죽음을 대수롭지 않을 일로 여긴 걸까?

    커트 보니것이 겪은 일을 보면 사실 이 말은 전혀 다르게 와 닿는다. 커트 보니것은 실제로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미국과 영국의 부조리한 폭격(실제로 드레스덴은 특별한 군사시설이 없고 대부분 민간인과 포로들이 살았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이 폭격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고, 그런 이유로 트랄파마도어인이라는 외계인을 만들어서 작품에 등장시킨 것이다. 트랄파마도어인처럼 4차원을 인식한다면 죽음이 별 게 아닌 게 되기 때문에 그런 부조리한 폭격도 별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드레스덴 폭격으로 얻은 충격과 후유증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3. 작품 안에 등장하는 트랄파마도어인이 작품 안에서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빌리 필그림이 머리에 충격을 받고 작품 안에서 만들어낸 가상 속 가상 외계인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작품 안에서 묘사되는 걸 보면 빌리가 트랄파마도어인을 만난 것이 사실처럼 묘사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데, 빌리가 트랄파마도어인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시기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부터 라는 것이다.

    사실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쨌든 트랄파마도어인은 허구고 4차원 인식이라는 개념이 없는 한 드레스덴 폭격을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


    4. 작품에 등장하는 죽음을 보면 대부분 허무하다. 주인공 빌리만 봐도 그렇다.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았고, 비행기 추락에도 살아남았지만 포로 시절을 함께 겪은 동료에게 총을 맞고 죽는다. 동료가 왜 빌리를 죽였는지는 읽어보길 바란다.

    빌리 아내도 허무하게 죽는다. 빌리가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했을 때, 빌리 아내는 그 소식을 듣고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가 난다. 차는 많이 망가졌지만, 빌리 아내는 멀쩡하다. 병원까지 운전해서 온 아내는 차에서 세어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죽는다.

    이 외에도 여러 죽음이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게 묘사되어있다. 정작 죽을 때 안 죽고 어이없이 죽는다. 결국 커트 보니것은 소설에서 죽음을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드레스덴 폭격 자체가 인과관계가 없고 말도 안 되는 폭격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소개하고 싶은 구절>

“그거 반전 책이오?”
(…)
‘대신 반빙하 책을 써보지그러오?”
물론 그가 한 말의 의미는 전쟁은 늘 있는 것이고, 전쟁을 막는 일은 빙하를 막는 일과 같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16p)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나도 물론 앞으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전쟁 책을 끝냈다. 다음에 쓰는 책은 재미있을 것이다.
이번 것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금 기둥이 쓴 것이니까.    (37p)
트랄파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때 그냥 죽은 사람이 그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트랄파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44p)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82p)
“가난하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지만, 차라리 창피한 게 나을 것이다”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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