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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Sep 04. 2018

37. 『국경시장』 - 김성중 - 문학동네

읽은 기간: 2018.8.31

한 줄 댓글: 무얼 말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해주는 이야기에 아무 생각 없이 푹 빠질 수 있다.


단편집이다.

김성중 작가가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 각각 발표했던 단편 8편을 묶어낸 책이다.

나는 문학을 대할 때 사대주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작품은 고전이 아니고서는 읽으려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한국 이름을 갖고 있으면 거부감이 생겼다.

배경이나 인물 설정이 너무 친근해서일까?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 작품은 그냥 집에서 피서를 보내는 느낌?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편견을 버려도 되겠다

우선 김성중 작가가 이 작품에서 한국 이름을 잘 안 썼다는 이유도 있겠고,

배경이 황홀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이 작가가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작품을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마지막 작품인 <한 방울의 죄>는 학교와 문방구라든지 술래잡기라든지 친근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배경과 인물, 사건까지 어릴 적 겪었음직한 것들이다.

그러나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한국 작가에게 갖고 있던 내 편견이 깨졌다.


<작품 내용>

국경시장: 기억을 팔아야만 물건을 살 수 있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쿠문: 벌레를 통해 전염되는 천재병이다. 걸리면 모든 분야에서 천재적인 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3~5년 안에 죽는다. 목숨과 재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

관념 잼: 곰 모양의 유리병으로 변해버린 사람의 이야기

에바와 아그네스: 두 친구 에바와 아그네스의 이야기. 에바는 모델, 아그네스는 사진작가(시간을 역순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동족: 여왕 킹코브라가 인간의 말을 인지하면서 벌어지는 일

● 필멸: 엄청난 명성을 안겨줄 곡 하나를 가지고 친구 넷과 교수 한 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

나무 힘줄 피아노: 평범한 대학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여러 여자를 만나며 한량같이 지내던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 한 호텔에 정착하며 벌어지는 일

한 방울의 죄: 집안 형편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하는 친구 희정과 노숙자 아저씨에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던 순수함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때 묻음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작품 특징>

    1. 줄거리보다는 묘사되어있는 배경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 작품이다. <국경시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이 작가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눈앞에 펼쳐진다.


    2. 상상력을 자극하고 개성이 다 다른 작품들이다. 8편을 따로 마주한다면 한 작가가 지었다는 것을 알기 힘들 정도다. 이야기는 다양하지만, 주제가 없다. 한 작품씩 읽을 때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을 읽으면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동시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기 마련이다. 근데 그런 걸 찾지 못하겠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소개하고 싶은 구절>

나쁜 기억을 팔면 물고기도 생기고 정신건강에도 좋고. 일거양득 아냐!    (23p)
물건에는 두 가지 상태가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 어느 것이 본질에 가까운 것일까? 용도에 따라 만들어진 사물이라면 당연히 사용될 때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
그러나 사물은 기능을 발휘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미학적이다. 그라인더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커피 가루를 날릴 때보다 원두가 든 유리병 옆에 놓여 있을 때 더 아름답다. (…) 인간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더 이상 사무원으로, 남편으로, 동료나 친구로 사용되지 않는 현재 표정이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하지 않은가 말이다.    (69, 70p)
여행지가 가장 좋아지는 순간은 그곳을 떠나기 직전이다. 이별이 가시화된 순간에야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처럼.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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