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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Nov 30. 2016

『변신∙시골의사』 - 프란츠 카프카 – 민음사

★★★

2016.11.29

한 줄 댓글: 경제력을 잃은 가장의 극단적인 현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잠에서 깬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신’한다. 그가 원한 변신이 아니다. 그레고르나 이 소설을 읽는 나나 벌레로 변신했다는 것이 꿈이기를 바랐다. 그가 벌레가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태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벌레 취급하며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학대를 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벌레가 됐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들 곁에 가는 것은 물론 쳐다보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나마 여동생이 내가 생각하는 가족상에 가장 가까웠다. 벌레가 된 오빠를 위해 신선한 음식부터 상한 음식까지 갖다 주며 그레고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2달 정도 지나자 여동생도 지쳐버린다. 오히려 부모님한테 벌레가 오빠가 아니라며 내보내자고 한다. 결국 그레고르는 그 말을 들은 그날 밤 방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과 여동생으로 구성된 4인 가족 중 일을 하는 사람은 그레고르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아직 학생이어서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부모가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몸이 아프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자 온 가족이 아무렇지 않게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제력을 잃어버린 가장이 집에서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레고르를 다른 동물이 아닌 벌레로 변신시킨 이유도 경제력을 잃은 가장의 ‘벌레취급’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또 가족들은 분명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가장인 아들에게 모든 경제력을 의지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갔다. 사실 세상에 이런 가족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아버지를 돈 버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집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경제력을 잃고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레고르를 보며 나는 우리 집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이 뭔지 정의할 수 없었다. 부모님한테는 아들로서, 동생들한테는 형으로서 그냥 그렇게 나는 우리 가족의 구성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카프카의 『변신』은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레고르가 벌레가 됐음에도 불구하고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이 소설의 전개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한테 사과를 맞고 비참하게 방 안에서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벌레라는 것 때문에 가족 구성원에서 이탈된 것이 아니라 경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에서 이탈된 것이다. 아무리 흉측한 벌레라도 경제력이 있었다면 이 가족들에겐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할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그레고르라는 남자의 본질이 경제력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비극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인간의 본질이 경제력(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는 것이다.


  읽을 때는 인간이 벌레가 됐다는 것에 흥미를 갖고 읽었지만, 독후감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철학적인 소재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맛에 독후감을 쓴다. 깊게 생각하면서 깨달음이 왔을 때의 그 쾌감은 독후감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앞서 읽은 8권(『살인자의 기억법』,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엄마를 부탁해』, 『정글만리』 1~3권)은 독후감을 못 썼다. 하지만 오늘 카프카의 『변신』은 독후감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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