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것을안개 속에묻어두지 마라 - 『질서 너머』 -조던 피터슨
한 줄 평: 사소하지만 매일 일어나면 결코 사소하지 않다.
'티끌 모아 태산' 작은 것이라도 모이면 나중에 큰 것이 된다는 뜻의 속담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며 이 속담을 자주 되뇌곤 했다. 500원으로 당장 과자를 사 먹고 싶지만, 참고 500원을 모으면 나중에 레고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속담은 보통 저축할 때 썼던 말이다. 지금은 보잘것없이 적은 돈이지만, 쌓이고 쌓이면 목돈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저축에 알맞은 속담은 아닌 거 같다. 오히려 이 속담을 조롱하듯 나온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말이 더 맞는 거 같다.
그런데 조던 피터슨은 법칙 3에서 '티끌 모아 태산'을 이야기한다. 조던 피터슨이 '돈 모으는 법'이나 부자 되는 법'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재테크보다 더 중요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인생의 법칙 중에 하나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을 말하면서 티끌의 주체가 '돈'이라면 재테크가 되겠지만, 조던 피터슨이 법칙 3에서 말하는 주체는 '사소한 문제'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은 장인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장인은 상황이 어려워질 때 슬며시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장인도 사소한 문제에서는 넘어가려고 했었던 거 같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장인은 점심을 항상 집에서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점심시간에 경고 한마디 없이 아내(조던 피터슨의 장모)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왜 우린 항상 이 조그만 접시에 담아 먹지?" 장모는 항상 똑같은 접시에 빵을 담아서 줬다. 그런데 그날따라 갑자기 장인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장인이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 장모는 남편이 작은 접시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장인이 한 번도 작은 접시가 싫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접시의 크기는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매일 일어난다면 그건 '중요한' 일이라는 거다. 결혼 생활을 10년 동안 했다면, 365 × 10=3650번의 점심 동안 작은 접시가 싫었지만, 참아왔을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참고 넘어가려고 한다. 하루만 봤을 때는 사소하지만 쌓이게 되면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하지만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면 바로잡아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게 조던 피터슨의 주장이다. '작은 지옥이 영원히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사람은 결혼 생활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 돌입한다.'(119) 사소하지만 매일 혹은 자주 반복되는 일을 그대로 두는 것은 거짓 평화에 속는 것이다.
자신의 하루 일과를 쭉 훑어보면서 사소하지만 매일 혹은 자주 일어나는 문제는 없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습관에 적용해봐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사람은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동물이다. 습관이 형성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21일? 66일? 이런 추정치들이 인터넷이나 책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기간이다. 기간이 정확히 얼마나 걸리는지는 몰라도 좋은 습관을 하나 만드는 데에는 꽤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모두가 안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습관을 없애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데, 알람이 울렸을 때 알람을 종료하지 않고 5분 뒤에 다시 울리게 하는 기능을 너무 잘 애용(?) 하고 있다. 내가 8시로 알람을 맞췄다면 사실상 나는 8시 반에 일어난다. 5~6번은 알람을 미루는 기능을 사용한다. 그럴 바에 깨지 않고 8시 반에 알람을 맞추면 좋겠지만, 아마 8시 반에 맞추면 또 미뤄서 9시에 일어날 거다. 최고 기록은 3시간까지 미뤄봤다. 그럴 바에 푹 잤으면 더 개운했을 텐데 말이다.
알람 미루기 습관은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었다. 이제는 '피곤하네, 조금 더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서 잠결에도 정확하게 미루는 버튼을 누른다. 하루에 삼십 분씩 늦게 일어난다고 하면 30분 ×365=10950분이다. 182.5시간이다. 어마어마한 시간이 쌓인다. 이 시간에만 책을 읽어도 지금보다 20권은 더 읽을 것이다. 이렇게 계산해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록 피터슨이 법칙 3에서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나는 특별히 습관에 적용을 해봤다. 피터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소한 문제지만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면, 이것을 안개 속에 묻어두지 말고 해결하라고 말한다. 사소하다는 생각에 쿨한 척 넘어가는 건 그 사람과의 관계를 혼돈으로 한 발씩 밀어 넣는 것과 같다. 어떤 문제든 해결하려면 그 문제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야 한다. 피터슨은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용기와 겸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야 하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피터슨이 말한 걸 요약하면 '나 전달법'과 동일하다. '나 전달법'이란 내 감정과 내 느낌, 내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장인의 이야기를 가져와보자. 점심을 작은 접시에 담아 먹는 것이 싫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면 된다. '나는 작은 접시가 싫어. 조금 더 큰 접시에 담아 먹으면 좋을 거 같아' 이런 식이다. 이게 굉장히 쉬워 보이지만, 우리의 언어 습관은 보통 '나 전달법'이 아니라 '너 전달법'이다.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하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거다. '왜 너는 음식을 작은 접시에 담아? 좀 큰 접시에 담으면 안 돼?' 이게 더 익숙할 거다. 문제를 짚어 이야기할 때 나를 전달하는지 너를 전달하는지 살펴보고 '나 전달법'으로 바꾸면 좋겠다. '나 전달법'을 잘 이용한다면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요점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소해 보이지만 매일 일어나기 때문에 중요한 일들을 해결할 물꼬를 틀 수 있다.
피터슨의 글로 법칙 3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옷장 속에 쓰레기를 계속 쌓아두고 숨기기만 한다면 당신이 가장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옷장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그동안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당신을 덮칠 것이다.' (134) 거짓 뒤에 숨고 싶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더라도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 사소하더라도 매일 일어나면 결코 사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