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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Jun 07. 2017

8. 『동물농장』 - 조지 오웰 - 민음사

★★★★★

기간: 2017.5.30

한 줄 댓글: 러시아 혁명. 북한. 절대 권력은 어떻게 부패하는가. 조지 오웰은 혁명이 소멸하기 훨씬 전부터 어떻게 부패할지 미리 보았다.


  조지 오웰 하면 『1984』와 『동물농장』이 떠오른다. 1984는 작년에 읽었다. 브런치에 발행하지는 않았지만 독후감까지 썼다. 『1984』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작품에서 전체주의자들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언어를 통제하고 역사를 바꾼다. 언어를 통제해야 생각을 통제할 수 있고, 생각을 통제해야 전체주의의 가장 큰 위험인 다양성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1984』- 민음사 345p)라는 말은 박근혜 정부에서 왜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려고 했는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조지 오웰은 통찰력이 뛰어난 작가다.

  동물농장은 우화 소설이다. 러시아 혁명을 농장에서 일어나는 동물들의 반란으로 우화 했다. 등장 동물들은 러시아 혁명의 실제 인물들을 대변한다. 책 뒤 작품 해설을 보면 등장 동물들과 실제 러시아 혁명의 주인공들을 1 대 1로 대응시켜놨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굳이 이걸 보지 않아도 동물들이 누굴 대변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에 대해 잘 모른다면 149p를 보면서 작품을 읽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소비에트 체제의 타락을 풍자하고 있다. 무산 계급인 민중을 위한 혁명으로 시작했지만, 욕심 많은 인물로 인해 결국 민중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고 그 전보다 민중을 더 억압한다. 메이저(마르크스)라는 돼지에 의해 농장에서 동물들(민중)의 반란이 일어난다. 반란은 성공한다. 그러나 메이저가 죽고 나폴레옹(스탈린)이라는 돼지가 권력을 잡게 된다. 스노볼(트로츠키)이라는 돼지가 나폴레옹을 견제하고 진정으로 민중을 위하는 혁명을 완수하려고 7 계명까지 만들지만 나폴레옹은 몰래 키운 개들(비밀경찰)을 동원하여 스노볼을 쫓아내고 농장을 장악한다. 나폴레옹은 스퀼러(프라우다: 소련 기관지)라는 돼지를 통해 계명을 바꾸고 동물들의 눈과 귀를 막는다. 계명이 바뀔 때마다 동물들은 의심하지만 결국 생각하기를 멈추고 바뀐 계명을 믿는다.

  계명이 바뀌는 모습은 이런 식이다. 원래 제 4 계명은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26p)이다. 그러나 여기에 '시트를 깔고'(63p)라는 말을 집어넣어 돼지들이 침대에서 자는 것을 교묘하게 합리화한다. 또 제 6 계명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26p)'이유 없이'(81p)라는 말을 집어넣는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단어들을 집어넣어 교묘하게 민중들의 생각을 막고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하나씩 계명을 바꾸다 소설 마지막에는 7개의 계명이 다 지워지고 하나의 계명만 남아있는데 그게 압권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117p) 권력 정당화의 마무리다. 평등이라는 단어에 비교 부사인 '더'라는 단어가 쓰인 것이 참 재미있다. 평등인데 더 평등한 건 대체 무엇일까. 민중을 기만하고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디테일이 일품이다.

  이 작품은 권력의 부패로 러시아 혁명이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소비에트 체제의 소멸을 보고 나서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1945년에 『동물농장』을 출판한다. 소비에트 체제는 1990년에 소멸한다. 참 놀랍지 않은가. 소멸을 보기도 전에 어떤 식으로 이 체제가 어떻게 붕괴하는지 오로지 작가 본인의 통찰력으로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지만 읽으면서 한 곳이 딱 떠올랐다. 북한이다.

아비 없는 것들의 친구이시며
행복의 샘이시고
마실 것의 주인이신 그대여! 오, 내 영혼은
불붙도다, 침착하고 위엄에 넘친
하늘의 태양 같은 당신의 눈을 볼 때마다
아아 나폴레옹 동무시여
(83p)

  소설 안에는 이런 시가 있다. 나폴레옹(스탈린)을 찬양하는 시다. 나폴레옹을 태양이라고 칭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이라고 하는 것과 많이 닮아있다. 물론 소비에트 체와 북한 체제는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은 이 작품을 통해 소비에트 체제뿐만 아니라 절대 권력이 어떻게 부패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조지 오웰의 통찰력에 취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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