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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Sep 08. 2017

23.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흐라발-문학동네

★★★

기간: 2017.9.5

한 줄 댓글: 미래로의 전진과 근원으로의 후퇴의 적절한 조화. 온고지신

  나는 무언가를 이토록 좋아할 수 있을까? 지금 가장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책이다. 옷을 살 때보다 책을 살 때 더 좋다. 책을 살 때 마음이 든든해지고, 뿌듯하다. 물론 지금 내 방에도 읽지 않은 책들이 30권 정도 있다. '다 읽으면 사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사고 싶은 책들이 쌓이면 못 참는다. 집에서 가장 큰 방을 책으로 가득 채워 서재로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다른 물건에 대한 수집욕은 전혀 없지만, 책은 꼭 사서 읽고 싶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책의 주인공 한탸는 축복받은 인물이다. 한탸의 직업은 폐지 압축공이다. 다른 압축공들과는 다르게 폐지들을 압축기에 곧바로 넣지 않는다. 폐지들을 살피며 좋은 책들을 구별한다. 그렇게 따로 빼서 모은 책들만 2톤가량 된다. 그 책들은 모두 집에 가져다 놓는데, 집 안의 거의 모든 장소를 책이 차지하고 있다. 정작 자신은 침대에 누워 잘 때도 책에 깔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폐지들을 천천히 살피며 일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의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항상 소장의 잔소리에 시달린다. 결국 젊은 압축공들에 밀려 압축공 일을 못하게 된다. 압축기에 자신의 몸을 던져 책과 함께 생을 마감한다.


  한탸가 하는 폐지 압축은 사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다. 쥐와 파리가 들끓는 지하실에서 파괴적인 일을 35년째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한탸는 압축하는 일 자체보다는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일을 했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좋은 구절을 만났을 때의 그 기쁨. 한탸는 그 힘으로 35년 동안 압축 일을 한 것이다.

  이 책은 130 쪽밖에 되지 않지만, 굉장히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책의 대부분이 한탸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 8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4, 5, 8장을 빼고 모든 장에서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와 같은 말로 반복해서 시작하고 있다. 5장도 첫 문장만 아닐 뿐, 첫 문단이 끝나기 전에 비슷한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문장과 지루한 내용 전개가 오히려 이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 강한 여운을 갖게 하는 장치가 된다.

  제목이 주는 역설적인 느낌은 책을 다 읽고 나서 한참 후에 이해가 됐다. 한탸의 삶은 특별할 것이 없다. 한탸는 고독하다. 하지만 한탸는 책에서 풍요로움을 찾는다. 한탸에게 책은 시궁창 같은 현실의 피난처다.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책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머릿속은 생각에 잠겨 복잡하고 시끄럽지만, 현실은 고독하다. 이게 저자가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각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비판도 들어있다. 한탸가 잘리기 전에 마주친 새로운 압축기와 압축공들은 한탸에게 충격을 준다. 폐지 더미를 살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저 압축하기에 바쁘다. 기계적으로 일만 할 뿐이다. 사람이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하지만 사람도 기계랑 별 다를 게 없다. 무분별한 발전과 속도 때문에 생각이 없어진다.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녹색 버튼과 붉은색 버튼의 조화,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과 레그 '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의 조화, 미래로의 전진과 근원으로의 후퇴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압축기의 일을 하듯이 삶도 무조건 적인 전진만 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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