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남편과 1년 만에 코인노래방에 갔다. 지금은 어린아이 둘을 돌보는 게 우선이라 코인노래방도 일단 멈춤이지만, 연애하는 동안에는 노래방 방문을 꽤나 즐겼다. 일정과 일정 중 잠깐 짬을 낸 터라 선곡에 심혈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고,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곡을 골랐다. 나는 자우림, 김윤아의 곡을 연달아 불렀고, 남편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삽입곡인 '너의 꿈속에서'를 불렀다.
남편이 '너의 꿈속에서'를 부르는 모습은 꽤나 진지해서 내 표정도 자못 진지해진다.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자 클라이맥스인 '살고 싶어'를 외칠 때가, 단연 압권이다. 마치 높은 단상에 서 하늘의 누군가에게 호소하는 것처럼 몸을 쭉 빼고, 양손을 허공에서 휘젓다 주먹을 불끈 쥔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연애시절 그와의 첫 데이트가 떠올랐다.
노래방에 가실래요?라는 그의 물음에 좋다고 대답하고 노래방에 들어선 순간, 남편이 노래를 부르는 첫 소절부터 부르는 내내 놀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와, 이 남자 음치구나......'
그런데 그가 노래를 부르는 행동에 담은 혼신은 굉장히 신선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시작된 감정파동이 그에게로의 청혼으로 이끌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음치남자가 노래를 부르며, '내가 음치인 거 나도 아는데, 누가 내 노래를 듣고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뭐랄까, 좋았다.
생각에 잠기다 보니 마지막 1곡 알람이 화면에서 반짝반짝거렸다.
'살고 싶어'를 외치는 남편에게 브라보로 화답하고 아쉬움 없이 노래방에서 나왔다.
"그러고 보니 당신 성악가처럼 노래 불러 보고 싶다고 했잖아."
남편의 '워너비 리스트'에 몇 년째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성악가처럼 노래하는 그 자신이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그랬다. 김윤아의 노래를 호소력 있게 부르는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
"우리 한번 노래를 자주 불러볼까?"
"그래."
나의 질문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남편이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한번 해봐.'라는 문장 속, 그 "누가"에 해당하는 것은 99% 이상은 바로 자기 자신일 거다.
네 나이에 노래 부르는데 그렇게 시간을 쓸 때야? 지금 네가 아가 보느라 바쁜데 그런 취미를 즐길 때야? 지금은 돈을 좀 더 벌어야 되는데, 그거보다는 돈벌이가 되는 걸 찾아보는 게 어때?
노래 하나 부르는대도 이렇게 질문이 많아서야 나 원 참.
나는 이런 질문을 "내려놓는 것"이 잘 안 되는 사람이고, 그것들도 분명 용도가 있으므로 머릿속에서 삭 없애지는 않되, 이런 질문을 압도하는 거센 파도 같은 사람이 돼 봐야겠다.
내 안의 그 누가 뭐라고 할지언정, 압도적으로 노래를 불러봐야겠다.
첫 데이트에서 노래를 부르던 음치남자의 태도로,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