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늙은이의 지혜가 필요한 날에
일이 삶이었을 때, 의사로서 약물 처방자나 상담자 정도의 역할이 나에게 알맞다고 생각했다. 치료자나 동행자라는 말은 어딘가 계면쩍었다. 내과를 전공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재택의료분야를 거치며, 나의 선택으로 연이 닿은 분들은 말기 암환자, 중증 신경계질환 환자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였다. 만년 조연인 돌보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과도 연이 닿기 위해 나는 그런 선택을 해왔나 보다.
"돌보는 사람"이라는 말은 말기 환자나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살피는 이를 지칭한다고 생각했다. 음을 향해 가고 있는 건강상태를 0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돌봄 받는 이를 위해 하나뿐인 갑옷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감싸고 서 있는 사람들. 본인의 맨살은 어찌 되는지도 감각하려 하지 않고 묵묵히 그 무게감을 견디며 서 있는 사람이 그들일테다. 나에게 그들은 그만큼 숭고하기에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이라고 칭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나를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둘째가 제법 돌보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도 무색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태어난 지 130일. 아직 일생을 일수로 표현하는 것이 쉬운 4개월 차 둘째가 전신에 심한 아토피 피부염을 진단받았다. 퇴사를 하고 뜻하지 않게 나의 주된 역할은 건강하지 못한 자를 돌보는 것이 되었다. 아가의 불건강 상태에 놓인 화살표를 건강으로 돌리려 노력하는 사람 말이다. 질병에 중증, 난치, 희귀 등이 붙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이들에 비하면, 내 수고나 마음씀은 그 보호자들의 1/10도 되지 않겠다만, 나도 그들처럼 건강을 위해 애쓰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이렇게나마 늘 보호자에게 공감하고 싶었던 일말의 마음이 어쩌면 성취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봄이란 말은 건강여부를 막론하고 쓰이지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동과 건강의 회복을 위해 하는 행동이 이렇게 다르구나를 체감하고 있다. 신경 쓸 일 없이 커 준 첫째와 둘째의 하루 일과를 비교해 보니, 약을 먹이고 바르는 일이 추가되는 것이 이렇게 하루의 짜임을 다르게 할 줄이야. 뿐만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로서 아가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면서, 비로소 의사를 만나고 간 이후 보호자들의 생활이 실감 났다. 환자에게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으면서도, 환자의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게 되는 그 마음부터 말이다. 아가의 담당의를 만나고 집으로 온 날 밤에는 나 역시 늘 같은 후회막심 레퍼토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 의사한테 이것도 물어볼걸. 나도 의산데 이걸 모르겠네로 시작되어 그때 왜 그걸 적어두었다가 물어보지 않았니 하고 스스로를 타박하는 마음은, 꼬리가 제법 길게 이어진다.
그래도 어쩌랴. 꼬리를 툭 잘라내고, 어김없이 우리는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새벽 6시. 아가가 깨어나는 시간에 맞춰 온몸에 약을 바르는 것으로 손가락이 작은 몸에 인사를 한다. 담당의의 지시대로 하루 두 번 스테로이드제를 발진이 보이는 피부에 바른다. 이어 보습제를 바르며 아가의 전신 피부를 한번 더 확인하는데, 그 울긋불긋한 정도와 거칠기로 그날의 내 행복값이 결정된다. 피부를 보며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일희하고 일비하지 않은 척한다.
일상을 행복한 날과 행복하지 않은 날로 구분 짓고 싶어질 때는, 책 <삶의로서의 일>의 한 꼭지를 떠올린다. 저자는 나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결과나 상태값이 아닌 덕목으로 제시했다는 것을 일러준다. 행복 역시 태도라는 그리스 현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보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주억거림이 멈추고 그 말의 주인이었던 변방 늙은이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불구가 되었을 때 새옹지마의 내용을 체현한 그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그리고 불구가 된 아들이 전쟁터에 나가게 되지 않았을 때 그의 표정은 또 어땠을까. 인간의 생과 삶에 대해 낙관이나 냉소가 아닌, 그 중간의 태도를 보였을 그 '변방의 늙은이'에게 지혜를 얻고 싶다.
돌보는 이들에게, 특히 정해진 기한 없이 사랑하는 이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변방 늙은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큰 위안이 된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내가 만났던 많은 환자들이 물었다. 내가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느냐고. 답하지 못하는 입이 늘 답답했지만, '원인'을 아는 것이 답이 되는 것 같진 않았다. 다만 벌어진 결과에 대해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희망을 얻는 방식과 구조를 알 수 있기를 바랐다. 희망을 얻는 공통된 해답은 없지만, 수천수만 가지의 각자의 방법은 분명 있지 않을까?
아가의 피부를 보며 억지로 물었다. 이 경험을 통해 삶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든 정신승리를 해보자라는 생각이었지만 질문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매사에 감사하라를 외치며 '이것조차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것은 스스로에게 진실되지 못했기에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질문은 내 삶의 공중으로 띄워졌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부유할 것이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한편으로는 이게 내가 희망을 찾는 방식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가의 붉어진 피부를 보다, 내가 아가에게 쏟는 노력값과 아가의 피부 상태값이 일치하지 않으며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예상을 늘 벗어나기에 일비 하려다 그저 웃었다. 습관적으로 이런 것이 왜 나에게 왔어?라는 물음이 표를 달려고 하면, 아가가 무사히 태어나기만을 바랐던 날들, 잘 먹고 잘 싸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날들을 떠 올려본다. 그리고 나름의 감사함을 표한다. 이것들에 감사함은 진정하기에,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아니다. 감사할 수 있는 일들에 감사하면서, 본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태도가, 오늘 내가 선택할 행복의 태도인가 보다. 그 태도는 스스로의 삶에서 절망과 희망이 누가 더 크냐고 저울 위를 올라서려 할 때, 희망의 발을 지그시 붙잡아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