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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08. 2024

감사의 역습

감사할 게 이게 아니었나봐요.

  '매사에 감사하기'는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단어 '매사'와 '감사하기' 사이에 '진심으로'라는 말까지 들어가면 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감사함이 모든 것을 덮는다'를 되새기며, 노트에 감사한 것들 써보기를 수년간 해왔는데 그래서 더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내가 정말 감사하고 있는 건가 하고 말이지요. 한 번은 명상수업을 통해 감사의 느낌을 확장해 보고 타인에게 보내보기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내가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느낌도 그때뿐이더라고요. 가만히 보니 이 문장들은 제가 얼마나 '감사에 힘을 쏟아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네요.


  많은 분들이 감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보통 좋았던 기억이 떠오를 거예요. 그 기억은 그때 그 순간, 즐거운 사건들로 우리를 잠시 우리를 데려가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에 단골집에 들러 따뜻한 잔치국수를 먹었을 때나 하다못해 버스에서 데굴데굴 굴러간 이어폰 한 짝을 앞자리에 앉은 분이 주워주시는 것을 받았을 때, 살았다고 속으로 외치며 꾸벅 인사를 하던 기억들로 말이지요. 이런 때를 떠올리면 또다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들처럼 감사한 상황과 대상이 자연스럽고 명확하지 않을 때는, 더군다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일때는 감사한 마음이 헷갈리기도 하더라구요.  


  당신도 그럴 때가 있던가요?

  저는 보통 그런 때엔 불만이나 불평이 함께 했던 것 같아요. 2년 전 저에게 '그 불만'이 고개를 들었던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서 진료교수 직함을 달았을 때였습니다. 내가 그간 매일 적었던 목표가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던 찰나였죠. 그런데 역시나 만만치 않더군요. 첫째는 돌이 막 지났고 병원에서는 재택의료팀 의료진으로 환자들의 집에 방문하면서도, 머리 한 켠에서는 써지지 않는 논문과 씨름을 했습니다. 여러 병원들이 함께하는 임상연구를 셋업 하며 동시에 복지부 발주 보고서를 작성하는, 그야말로 매일이 '원고마감일'의 연속이었어요. 정확히는 2년간의 전임의 생활을 마치기 5개월 전부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출근하기 전, 퇴근 후,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아가를 볼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했지요. 매주 주말에는 아가를 시부모님께 전적으로 맡겼고, 이 즈음부터 남편은 자기 혼자 아기 키우기가 힘들다며  저에게 일을 그만두는 것이 어떤지 조심스레 묻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때도 매일 감사일기를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소소한 것들을 감사하다고 쓸 때마다 스스로가 기쁨으로 가득 찬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렇다고 매일이 좋았던 건 아닙니다. 어떤 날은 그냥 손만 감사하다고 써 내려갈 때도 있고, 마인드세팅을 위해 의례적으로 쓰는 날도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 '그 불만'이 튀어나왔을 때 제가 내린 처방은 ‘현재에 감사함을 더 열심히 써보기’였습니다. 내가 일하고 싶었던 직장이었기에, 이렇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커리어를 쌓아감에 감사했지요. 처음에는 어디부터가 잘못된 것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분명히 목표노트에 있던 삶인데? 그래서 저는 다시 노트를 붙들었어요. 쓰다보니 생각이 스쳐갑니다. 내가 생각한 목표가 타인의 목표는 아니었을까?


  그때 제 불평은 일상의 작은 짜증이 아니라 삶 차원에서의 불만이었기에 불만족의 이유를 살폈어야 했는데, 감사를 위한 감사를 하느라 그 내용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부정적인 감정이기에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긍정의 힘"을 외치는 저는 종종 이런 실수를 합니다.

<감사의 재발견>은 전반적으로 감사의 유용과 쓸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화자 중 한명인 아미 고든은 지혜롭게 감사할 것을 강조하며 감사가 오히려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감사가 문제를 덮는 미봉책이 될 수 있다. 사실 심각한 문제에는 분노같은 부정적 정서가 더 건설적인 반응일 수 있다."라고 말이지요.

  '감사함을 찾아내어 일기를 쓰는 내'가 좋았던 저는 감사로 불만을 눌러놓고 있었습니다. 미봉책이었지요. 그래서 퇴사를 결정하는데 1년의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답니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면 저는 이렇게 해볼 생각입니다.

1. 감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지 말고 불만이 생겼다는 자체에 감사해 보기, 그리고 살펴보기

2. 감사할 때 느끼는 느낌이 삶에 활력을 주지 않는다면 그 항목은 무시하지 말고 다시 보기

3. 일에서의 성취는 늘 목표 노트에 적혀있으므로 제일 우선순위 같아 보이지만, 아닐 수도 있음을 떠올리기. 그 시점에서 우선이 되는 가치를 다시 한번 살펴보기.


  저는 늦게나마 불만의 내용을 살펴 당시 제선에서의 최선을 찾았고, 또 그것이 다른 인연들로 연결되었습니다. 늦게 알아차린 것이 안타깝지만 이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어요. 삶에서 놓치고 싶지 않기에 감사를 자꾸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감사는 무탈한가요.


출처 pic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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