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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08. 2024

돌보지 못한 사람

김이남씨 잘 계신가요

 단골손님 김이남씨의 이름이 입원명단에 올랐을 때, 매달 돌아오는 수급일이 5일쯤 남았나 싶었다.

  

 ‘또 오셨네. 수급일자에 맞춰서 퇴원하시겠지.'


 그의 퇴원이 내가 예상했던 날짜보다 며칠이나 지연될 무렵에야,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노숙인들이 수급일을 넘겨 퇴원한다는 건 정말로 불건강하다는 것이었기에, 한편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급일 다음 날 퇴원하지 않은 그에게 나는 말해야 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잘라내야 한다고.

 ‘가능한 무미건조하게 말하자.‘ 그렇게 해서 환자에게  감정적인 동요가 일기 전, 그 방에서 나오는 것을 나는 목표로 삼았다. 목표가 그랬기에, 나는 고작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이미 왼쪽 발가락 3개가 없으니,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하나 더 덜어내는 일은 별일이 아니겠지?


회진을 돌며 교수님은 김이남씨에게 "당뇨가 있는데, 또 술을 드시고 혈당관리가 안돼서 결국 오른쪽 발가락 혈관에 문제가 생겼다."며 절단의 이유를 설명했다. 존댓말임에도 내용 때문인가, 존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요약하면 결국 당신이 자초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여느 환자들처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옹송그려져 작은 어깨가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김이남씨는 혈당조절이 잘 되지 않는 당뇨환자였고, 당뇨합병증으로 안과와 신장내과까지 진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받으려면 여러과들의 허락이 필요했다. 수술위험도 평가를 위해서 얼른 협진의뢰를 하고 답변을 받아야 했기에, 나는 그에게 재촉하듯 수술을 준비하자고 말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김이남씨가 입을 열었다.

"싫습니다."

그때 내가 그에게, 왜 싫으냐고 물었던가? 수술을 받지 않으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을 지리하게 설명하고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던 것만 기억날 뿐. 왜 수술을 받기 싫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랬으므로 나는 당연히 그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곧 엄지발가락이 곪아들어가 고름이 나기 시작했고, 나는 이전부터 협진을 봐주었던 정형외과의에게 재의뢰를 했다. 그가 방문하여 환자의 발가락을 보더니 나를 보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당장 수술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는 의미였다. 김이남씨는 그날부터 병실에서 드레싱 할 수 없는 환자로 분류되어 수술실로 내려가 드레싱을 받았다.


어느 날 수술실에서 김이남씨 드레싱을 해야되는데 정형외과 환자를 보조하는 인턴의가 연락이 안 된다기에, 그의 담당의인 내가 수술실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날은 스트레쳐카를 끌고 환자를 이동시키는 이송원들 역시 맡은 환자가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제가 어차피 수술실 갈 거라서 스트레쳐카 끌고 갈게요."

스트레쳐카를 밀고 12층 내과병동 병실에서 내려와 2층 수술실에 도착하는 동안,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나오고 하염없이 복도를 걷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정말 수술 안 받으실 거예요? 발 상태가 심각해졌어요."

내가 그에게 다시 물었고; 그는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내 말을 듣지 못하진 않았을 텐데......그러던 그가 다음날 수술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환자를 반기는 의료진은 없지만, 김이남씨는 너무나 다행이라고 모두가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다.

김이남씨는 발가락을 잘라냈고 우리는 그에게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했다. 다음 수급일을 맞아 그는 퇴원했다. 전공의 트레이닝을 받는 마지막 날까지 병원을 여관같이 여기는 노숙인들을 몇몇 만났지만,그 이후로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지하철 역사에서 <빅이슈>를 산다. 빅이슈를 판매하는 노숙인들을 만나면 영락없이 김이남이란 이름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때 그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들이 떠오른다. 그는 당뇨가 있음에도 술을 먹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는 어디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까. 매일 돌아가 몸을 뉘일 고정된 공간이 있었다면 그의 발가락은 보존될 수 있었을까. 20대였던 나에게 그는 몸이 망가져가도 관리하지 않는 노숙인 무리 중 한 명이었으므로 나는 그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았다. 따라서 묻지 않았다.

빅이슈 매거진을 정기구독하여 집에서 받아볼 수 있음에도, 내가 역사로 판매원들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사는 이유는 뒤늦은 질문에 대한 속죄일런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는 그에게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했지만 글쎄, 그는 어땠을까.

 그날 우리는 아무도 치료하지 못했으며 그 누구도 치유하지 못했다.


* 글에서 나오는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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