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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11. 2024

엄마 반찬

청량고추가 반가운 날

오랜만에 놀러 온 동생이 엄마 반찬을 이고 왔다. 엄마가 직접 키운 청양고추 한 봉지를 얼려서 함께 가지고 왔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그녀는 해마다 청양고추 모종을 사서 앞마당 화분에 심어놓고는 애지중지 보살폈다. 우리는 고추 화분 덕분에 허브 텃밭을 가진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부럽지 않았다.


엄마가 달하야 가서 청양고추 두 개만 하시면, 나는 신이 나 마당으로 가서는 가장 길쯤한 고추 두 개를 따와 그녀에게 건넸다. 그렇게 완성된 청양고추 된장찌개를 한 술 뜰 때의 기쁨이란. 첫 기억이 중학교 때부터니 나는 입 안에서 퍼지는 얼얼한 즐거움을 꽤 오래 누렸다. 우리 집 청양고추들은 늘 일관되게 높은 맵기를 자랑했기에, 30대 초반 결혼을 하고 서울로 이사 온 후로는 그런 청양고추를 본 적이 없다고, 실은 그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자주 툴툴거렸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동생 편으로 얼린 청양고추를 한 봉지 받았을 때, 어느 귀한 음식을 받았을 때보다 진심 어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동생이 들고 온 가방 속에는 가지나물과 깻잎무침 반찬도 들어있었다. 반찬이 담긴 용기가 무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반찬용기의 세배쯤 되는 특대형이었으니 두 가지 반찬이라 해도 양이 많았다.

역시 엄마다워. 엄마에게 고맙다고 안부전화를 드렸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 가지를 처음으로 '말려서' 나물을 해봤고, 깻잎은 짭짤하게 무쳐서 오래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담백하게 말씀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왠지 어깨를 으쓱거리고 계신 것 같아 나도 통화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상대의 좋은 기분은 전화기를 타고서도 전해지니까. 뿌듯해하는 어른들을 보면 코끝이 찡해져 엄마와 통화가 끝날 무렵 코가 맹맹해진 느낌이었다.


반찬들을 꺼내다 보니 이번에도 역시나, 반찬통들은 "OO떡집"이 적힌 황금보자기에 감싸져 있었다. OO떡집에서 또 떡 드셨나 보네, 내 얼굴에 픽하고 미소가 일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한 후에도 종종 두릅이나 고구마순 같은 것들을 택배로 보내주셨는데, 물건들을 넣은 상자는 감자나 고구마가 들어있던 박스였는지 그 겉면에 OO영농조합이 늘 크게 쓰여 있었다. 물품들을 고정시키려고 함께 넣은 수건에는 '환갑을 축하합니다'같은 문구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나는 그게 좀 촌스럽게 느껴졌다. 신혼 초 시어머니께 고급스런 선물 상자들을 받을때면 유독 더 그랬다. 엄마의 스카프는 서울 시어머니의 스카프에 비해 늘 더 빨갰고 윗옷의 스팽글은 왜 그렇게 빛나 내 눈을 부끄럽게 했던지.


그러고 보면 내가 고등학생 때 늘 고수하던 깻잎머리와 반짝이가 덕지덕지 붙은 코끼리 천가방이 엄마에게도 딱 그랬을지 모르겠다. 함께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이 묻기도 전에, 아 우리 애가 이 가방을 또 들고 나왔네 하면서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하시던 엄마가 떠올라 또 한 번 웃었다.

우리 모녀도 내가 고등학생 땐 무진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십 대 후반 나름의 사춘기를 겪으며 밴드부에서 드럼을 친다고 허구헌 날 드럼스틱을 가지고 다니고, 타자경시대회 전날 밤 파마를 한다고 오밤중에 머리에 그루프를 말던 내가 엄마 눈에는 어떻게 비추었을는지. 엄마는 그러던 딸이 이십 대가 되더니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는데, 늦둥이 아들이 누나에게 사춘기 바통을 이어받아 또 속을 썩인다고 한숨을 쉬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엄마가 유난히 절에 다니며 부처님을 찾으셨던 것 같다.

 

그랬던 동생도 이십 대가 되어 부모와 조카를 챙기는 사람이 되었고, 그도 나도 엄마반찬의 힘을 느끼며 조금은 철이 들었나 보다. 동생이 고향집으로 내려간 후 아가를 혼자 돌보다 저녁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타원형 접시에 밥은 대충, 엄마 반찬은 공들여 담았다. 말린 가지나물을 정성껏 씹으며 흐물거리지 않는다고, 정말로 맛있다고 느낌표를 가득 담아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 메시지에 엄마는 김치는 있어?라고 답하듯 물으셨다. 엄마표 총각무김치 두 통을 짧은 기간 격파하듯 먹었던 터라, 없다고 하면 또 부랴부랴 김치를 담그실까 봐 어떻게 답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는 나에게 언젠가 엄마가 걱정 말라는 듯 말씀하셨던 말이 기억났다.

내 새끼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게 없단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야 알았다. 오물오물 '먹기'로 감탄을 자아내는 존재가 있다는 것과 엄마반찬이 너무나도 귀하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의 반찬은 그렇게 또 나를 보살핀다. 이에 응답하듯 나는 양념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반찬을 입에 넣는다.


달하야, 가서 청양 고추 두 개만 따 와.

그 목소리를 언제까지고 듣고 싶은 건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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