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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un 22. 2024

작가 스텔라황 북토크 후기 @책방 일일호일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1년 전, 친구가 책 소개가 담긴 링크하나를 보냈다.

"이 책 소개글을  보고 네가 떠올랐어. 그런데 여긴 신생아 중환자실이야."

그렇게 작가 스텔라 황의 첫 책 <사랑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를 만났다.


책 제목만 보고도 눈물 폭포가 예상되어 첫 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직도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스텔라황 작가의 두 번째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첫번째 책을 읽어볼 용기를 내는 중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한 소아중환자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녀는 존재만으로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아가들의 죽음을 이렇게나 자주 보다니, 성인의 죽음을 자주 목도하는데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구나....’

그녀가 내게 건넨 첫 번째 위안이었다.


퇴사를 하고 올해 4월부터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북 <임종방 찬가>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글들 중 <죽음을 물었던 그에게>라는 내 글에 작가 스텔라 황이 라이킷을 누르고 갔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같은 스텔라황 작가님인가?

그랬다. 그녀였다. 이곳에 스텔라황 작가가 있다니! 놀라움을 감추며 그녀의 글들을 읽어나갔다. 그녀의 글에서 전해지는 희로애락을 함께 느꼈다. 행운의 시작이었다.


존경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팬심을 담아 덕질을 하던 중, 그녀의 브런치에서 북토크 소식을 접했다. SNS가 처음인 나에게 브런치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240618 기다리던 그날이 왔고 북토크가 진행될 건강책방 '일일호일'로 달려갔다. (일일호일은 책방지기분들의 마인드도 멋졌는데, 그만큼 외관도 내관도 멋진 곳이었다.)

스텔라 황 작가는  보석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나에겐, 전격의 메시지였다. 모두 담지 못해 아쉽지만 일부를 기록한다.


- 삶의 격언 : "사랑이 전부다"

나는 사랑이 전부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운명인가 보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의 격언 같은 한마디로 에밀리 디킨슨의 이 말을 뽑았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공감의 잣대를 엄격히 세우는 편인데, 그녀를 통해 다시 만난 이 문장을 애정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 회복탄력성의 바탕 : "책 읽기와 글쓰기, 공감하고 지지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회복탄력성에 바탕이 된 것들로 이 세 가지를 뽑았다. 그중 주위의 좋은 사람들이 인상 깊었다.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나타내는 반증이 아닐지. 실제로 그녀의 책에는 '멘토'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멘토들은 그녀에게 자기의 품과 시간을 내어주고, 그녀를 있는 그대로 지지한다. 대학병원의 교수들 사이에도 서로가 서로의 멘토가 되어주는 시스템이 있다니. 결국 사람, 결국 사랑이다.


- 자녀들에 대한 철학 : "아이들은 살아있으면 되고, 친절하면(nice)됩니다"

이것은 그녀가 자녀들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두 가지였다. 북토크 내내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던 나는 이 말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놓치는지.

아가들과 그보다 더 큰 아이들이 생과 사를 오가는 것을 자주 목도한 그녀는, 자녀를 잃은 부모를 생각하면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라고 말한다.


- 타인에 대한 태도 :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로도 마음이 전해져요"

그녀가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 한마디로 느껴졌다. 의료진과 부모가 함께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를 잃었을 때, 아이를 보내고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부모와 그 공간 속에 함께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저 함께 함'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고. 조안 할리팩스 같은 선사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날과 그녀의 이야기들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을 지속해서 달구는 숯과 같다.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고통이 없었겠냐만은, 그의 방식은 타인에게 힘내라고 재촉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신이 지펴짐으로 주위에 열기를 내뿜고 그와 연결된 숯이 자력으로 타오르게 한다. 그렇게 숯들은 계속 연결되어 주위를 끊임없이 따뜻하게 한다. 명상하는 의사들의 학회에서 한 연자에게 들었던 ‘숯’이라는 표현은 딱 그녀를 묘사하는 단어 같았다.


같은 학회에서 compassion을 주제로 이야기했던 다른 연자의 이야기도, 스텔라 황 작가님을 보며 떠올랐다. 공감이 '나는 너를 느끼고 있어'라면 compassion은 '나는 너를 안고 있어'라는 느낌이라고.

자신을 숯처럼 뭉근히 달군 그녀는 타인을 그런 방식으로 껴안는다. compassion이 사람의 모습이라면 그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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