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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Apr 06. 2024

만인의 손주

그가 달라 보이던 날

  "동생아 미안하다. 그동안 내가 너를 너무 물로 보았어."


  동생이 있는 분들은 나이가 어떻든지 간에 그가 늘 어리게 느껴지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이다. 마치 나이가 70세인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에겐 '우리 아가'이듯이.

  20대 후반인 남동생이 나에게도 늘 어려 보였다. 그는 나보다 10살이 어리기도 하거니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직 한 살이 채 안된 남동생을 업어주었던 기억들이, 더 그렇게 만드나 보다. 키도 나보다 훌쩍 커진 동생이 일을 며칠간 연달아 쉬게 되었다며 조카들을 보러 서울에 왔다. 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들고 이고서.


  둘이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 초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지난번 그 할머니는 퇴원하셨지?  내가 물었다.

  지난달, 신경외과 병동에서 남자 간호사로 일하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주요 내용은 '환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맞고 있는지'였는데, 가장 최근에는 뇌졸중으로 입원한 알츠하이머 할머니에게 여기저기 얻어맞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턱이 너무 얼얼해."

  환자가 그런 것이기에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직도 얼얼한 턱으로는 할머니를 다시 볼 엄두가 안 난다기에 나는 '아이고.그치'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보통 병원 내에서 '폭행'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병원 보안팀에서 의료진 보호를 위해 출동하지만, 진단명이 알츠하이머인 할머니인 데다 이에 폭행이 의도적임을 구별하기 어렵고, 맞는 사람이 특히나 남자간호사인 경우. 이 애매한 지경에 곡소리를 해줄 수 밖에.


  "아 그 할머니는 진작에 퇴원하셨지. 내가 이번달에 내과병동으로 오면서 할머니가 나를 좀 찾았다고 하시더라고." 동생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할머니는 뇌경색 때문에 처방된 아스피린을 꼭 복용해야 했는데, 영양제 아니면 안 드신다고 워낙 강경하셨었단다. 그녀는 알츠하이머도 같이 앓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말들로는 약을 먹어야 함을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담당 의료진들은 L-tube (비위장관)를 꽃아서라도 약을 투여해야지 않겠느냐며 심각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동생이 환자에게 "할머니 손주 왔어요. 약 드실 시간이에요."라고 이야기하면서 약을 드리면 천천히 약을 드셨고, 할머니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계시는 동안 동생은 더 바빠졌다. 할머니와 관련된 일에 여러 간호사들과 간병인까지 동생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너에게 너무 힘들지 않았어?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계속 그 환자 약을 챙기고 하면 말이야." 나 역시 의료진이기에 그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아니 난 그래도, 그렇게 해서라도 약 잘 드시면 좋지."


  내 동생이 본지 얼마 안 된 할머니에게, 손주 왔어요라고 할 만큼 곰살맞은 사람이었나. 아니면 철저히 직업의식을 발휘하는 걸까. 약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먹어야 하는 것이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억지로 약먹이기란 참 고역인데......  간호사와 환자로 만난 사이는 좀 다르려나.

  "그렇게라도 약 잘 드시면 좋지."라고 말하며 슬쩍 웃는 동생을 보며 나는 '그에게 빚을 졌구나'생각했다. 말로 하지 않았지만, 그가 할머니에 대해 표현하는 방식과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그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약을 먹음으로써 그 시간대, 그 병동이 평화로웠을 것도 상상이 되어 웃었다.


 사실 동생은 그간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기보다는, 흠을 찾아내고 실수는 크게 벌하려는 분위기 때문에 일하는 기간이 편치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에게 너무 힘든 일은 맞지 않는 일일 수도 있으니 한번 따져보고, 그렇다면 인정하고 떠나는 것은 전혀 실패가 아니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내 의지와 인내가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라고.


"그래서, 일은 계속할만해?"


 "응. 병동 옮기면서 또 적응해야 하고 다른 과라서 힘들긴 한데, 나는 환자랑 보호자들이 고맙다고 하는 말에 그렇게 힘이 나더라."

그는 평소 '일을 해나갈 힘'이 50이라면 일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힘이 0으로 떨어질 때, 타인을 돌보고 나면 그게 다시 100까지 채워진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상 돌보는 직업이 잘 맞는가 보다.'고 생각하다가도, '조금만 더 일해봐. 계속 사람을 대하는 게 얼마나 기력이 빠지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슷한 직군에서 몇 년 더 일했다고 이렇게 말하려 하는 내가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래, 이건 그냥 내 생각이지.

  물론 내 동생도 일을 해 나가며 대하기 어려운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면 힘들고 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면 될 일이고, 매번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동생이 지금 느끼고 있는 그 마음이 중요하기에 그거면 됐다 생각했다. 미리 걱정하지 않고, 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러냐고도 하지 않고.


"이제 조카들 보러 가야지."

첫째에게 선물할 그림책을 가져온 그가 조카들을 볼 생각에 설레어했다.


오랜만에 놀러 온 동생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의 손에 들린 엄마 반찬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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