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죽기 어려운 나라

by 달하


응급실 10D, 4번째 자리에 도착했다.

인공호흡기가 맹 할아버지에게 규칙적으로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고 그 옆에 노년의 아내가 초조한 듯 손을 비비며 서 있었다. 혈압을 올리는 약물이 시간에 맞춰 들어가며 간신히 환자를 잡아두고 있었다. 혈압이 잘 측정되지 않는다고 연신 알람을 울려대면서.


"선생님, 제가 괜히 119 불렀나봐요. 이런 모습이 될 거였다면 그냥 집에 있어야 했는데......"

아내의 목소리에서 진한 후회가 묻어났다.

"어머니, 제가 그 상황이었어도 119 불렀을 거예요."

내 대답에 아내가 말을 이었다.


폐암 말기였던 맹할아버지는 숨이차서 어젯밤 응급실에 오려던 참이었다. 119에 연락하자마자 대원들이 집으로 도착했지만 그 짧은 사이, 할아버지의 숨이 멎었다. "모든 응급처치를 다 해달라"는 아내의 울부짖음에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구급차로 옮겨진 맹 할아버지는 산소를 공급받으며 응급실로 향했다. 이후 보호자들이 보지 못한 장면들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맹할아버지에게 기관삽관과 동시에 인공호흡기가 연결되고 연이어 승압제가 투여된다. 그 과정 내내 가족들은 그의 철저한 대변인이 되지 못한 채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환자의 경과를 묻는 가족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떼면 바로 임종하실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가족들은 그제야 애써 외면해 두었던 환자의 모습을 살려낸다. 몇 달 전 가족들과 함께 병원에 방문했을 때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며 문서를 작성하던 그의 모습을. 그 자리에 동석했던 맹 할아버지의 아들은 이게 아닌데라는 마음으로 우리 센터로 찾아왔을 것이다.


"아무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아버지가 너무나 힘들어 보입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좀 해주실 수 없나요?" 그가 우리 센터에 도착해서 나를 만나자마자 한 이야기였다. 아들은 아버지가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상황이 더욱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집에서 응급실을 거쳐 우리 센터에 찾아오기까지 그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환자가 '나는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겠노라' 선언해도 결국 그 생각을 지켜주는 것은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이며, 이것을 잘 지켜내지 못했을 때 받는 괴로움도 그들의 몫이다.

아들과의 이야기속에서 우리에게 강단 있게 말씀하시던 맹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인공호흡기 같은 거 안 할 겁니다. 지금 내가 더 이상 치료는 못하지만, 나는 말이지 자연스럽게 갈 거예요." 그는 연명의료계획서에 군더더기 없는 행동으로 서명하였다. 이미 이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수차례 생각해본 터였다.

나는 말이지 자연스럽게 갈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가지 못했다. 환자의 생각을 잘 대변하지 못하는 보호자일지라도, 그들의 의견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떼는데 막대한 역할을 한다. 또한 가족 간 얽히고설킨 마음들도 그 결정에 제 몫을 한다. 인공호흡기를 '달아두지'않으면 뭐라고 해댈 오빠들이 무서운 막내 딸이나, 동생에게 병든 어머니 돌봄을 맡기다 늦게 모셔오게 된 장남부부도 그것을 달지 않겠다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이후에는 가족들에게도 힘든 결정의 시간들이 닥친다. 또한 119에 연락한 순간 그렇게 응급실에 오면, 우리나라는 단계마다 '살리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므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죽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119 대원들과 와 응급실 의료진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맹 할아버지는 우리 병원에 지속적으로 다니던 환자였으므로 전자차트에 연명의료계획서 아이콘이 띄워져있었고 가족들도 그가 연명의료를 원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응급실 의료진도 그 아이콘 확인을 할 수 있으므로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알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이 응급실로 환자를 모시고 온 이상 그들에게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되는 몸 상태지만 소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라고 말해도 보호자들은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을 거예요."라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상황이 그렇다. 그렇기에 나도 보호자들에게, 우리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안 하기로 사인했다'라고 먼저 말하라고 여러 번 교육한다. 환자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살피다가 임종기가 예상되는 환자의 보호자들에게는, 그 순간 환자가 증상으로 힘들어 보여 응급실에 가게될 수도 있으므로 꼭 그 문장을 숙지하고 있도록 안내한다.


결국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맹 할아버지의 아내와 아들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응급실 담당 의사와 상의했다. 응급실 담당의는 현재 환자에게 승압제가 높은 농도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혈압이 잘 측정되지 않으므로 승압제만 중단해도 금방 임종하실거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내는 맹 할아버지 볼에 입을 맞추었다.

유난히 아내 걱정이 많았던 그였으므로, 아들이 잘 모신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나도 한 말씀드렸다. 모두 인사를 마치고 난 후, 승압제 투여를 중단했다.

15분 후, 할아버지는 그렇게 임종을 맞이하였다. 응급실 간호사가 승압제가 들어가던 기계의 전원종료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고, 다음 환자진료를 위해 센터로 돌아온 후였다. 병원기록을 통해서 그의 임종을 확인했다.


우리에게도 응급실에서 환자가 이런 방식으로 임종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응급실은 환자가 임종하기에 친절한 장소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맹 할아버지의 경우 마침 음압실로 만든 1인실이 비어있었고 거기에 운 좋게 그가 들어갔다. 환자가 작성해 둔 연명의료계획서가 있었고 뒤늦게나마 보호자들이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고 망설임 없이 요청했다.

맹 할아버지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공호흡기를 '달았지만' 그것을 당일 떼어냈으므로 그가 원했던 대로 임종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을런지. 길을 돌아가며,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겪는 수고로움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임종을 맞이하려면 많은 이들의 도움과 운이 필요하다. '잘 죽는 것'에도 운이 필요하다면, 그 운을 틔우기 위해 시작해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죽음을 그려보고 주변에 알려두는 것이겠다. 죽음에 대해 가까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눠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미룰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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