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계획서의 누명

by 달하

평소 나는 누군가 의료에 대한 질문을 하면 가능한 답을 피한다. 그 답이 의학교과서에 나와 출처가 명확한 이야기가 아니면 제 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라며 나의 관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나도 입에 게거품을 물 때가 있는데, 바로 연명의료계획서나 완화의료호스피스에 대해 잘못된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오늘은 내가 과히 심하게 입에 거품을 문 날이었는데 그 시작은 한 통의 전화였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옹기종기 모여 일하고 있는 우리 센터로 간호사 H의 지인이 전화를 걸었다.

평소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H가 통화를 하다 언성을 높였다.

“네? 살인행위라고 하셨다고요?"

순간 우리 센터원들의 귀가 일제히 쫑긋했다.

"에이 그건 그 선생님이 정확히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평소 특정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견해를 들어보는 간호사 H도 '그건 그 선생님이 모르는 거'라고 일축했다.

“무슨 통화예요?" 내가 물었다.


“아 어느 종합병원 심장내과 선생님이 말기암 환자분에게 연명의료 계획서를 써두는 것이 살인행위라고 말씀하셨대요.”

"네에?" 간호사 H가 말을 이었다.

말기암 환자인 지인의 어머니가 숨참을 호소하여 응급실을 통해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님은 임종기에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노라며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해 두신 상태였다. 해당 병원에서는 숨참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심장내과에도 협진을 했고, 곧 심장내과 의사가 방문하여 문진을 했다. 어머님은 그와 증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저는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해 두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심장내과 의사가 말했다. 그건 살인 행위이죠.”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말기암 환자들에게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도록 매일 돕는 나는 그럼 교사죄에 해당하는가. 순간 그 심장내과의의 무지와 무성의함에 화가 치밀었다. 이야기를 곱씹을수록 내가 화를 낼 수 있는 지점은 여러 군데였다.

먼저 그가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

한 발 양보해 그 서식을 많이 쓰지 않는 과의 의료진은 모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납득 되지 않았다. 또한 굳이 '살인'이란 단어를 써가며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가 툭 내뱉은 말에 환자와 가족들은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내가 ‘그런’문서를 작성한 것인가, 우리 어머니가 이것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것은 아닐까. 취소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마음이 어수선해져 쉬이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라며 가슴을 한번 쳤다. 어제는 또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는 교수님의 할머니가 말기암 환자였다. 그녀는 한 대학병원에서 현재 CRRT(지속적 신장 대체술, 혈액투석의 일종으로 24시간 동안 천천히 투석을 하는 것. 보통 중환자실에서 행해진다)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 교수님은 말기암 환자인 할머니가 CRRT를 받고 있는, 중한 상태를 고려해서 지방으로 내려가 그녀가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실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고 며칠 후, 할머니의 담당 교수가 보호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환자분이 삶의 의지가 없어 보이는데, 이건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해 두어서인 거 같아요. 왜 그렇게 환자를 포기하려 하시나요?"

왜 환자를 '포기'하려느냐고 묻는 의사에게, 그런 게 아닌 보호자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무지와 넘겨짚음이 점철되어 말이 칼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살인행위라니요, 환자를 포기한다니요.


그들이 보면 나나 우리 센터원들이 임종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편향되어 보일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죽음에 대해선 내 의견이 명확하고 편향된 사람이 맞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래야 할 수 있기도 하다. 환자가 잘 임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니까. 우리에게 ‘잘 죽는다’의 의미는 사람이 가장 자연스럽게 임종하는 것이다. 또한 말기 환자들의 경우 그들에게 발생하는 증상이 가능한 환자를 괴롭게 하지 않도록 하고, 허락한다면 삶을 반추해 보도록 환자와 보호자를 돕는 것 역시 우리가 하려는 것들이다. 우리는 환자가 죽음을 삶과 나란히 놓고, 그럼으로써 삶을 대하는 자신만의 힘을 갖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나는 적어도 환자가 병원에서 홀로 임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 앞에서 내 관점은 명확하다. 나도 욕심이 있다. 그리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 말할 때 필요한 게거품도 준비해두었다.



*** 설명이 필요해요! ***

두 의사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연명의료 계획서가 효력을 발휘하는 때가 '임종기'라는 것을 모르리라.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둔 말기암 환자더라도 필요한 시술,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여느 환자들처럼 환자의 이득과 위험을 고려해서 말이다. 예를 들어 말기암환자의 컨디션을 고려했을 때 혈액투석이 해봄직하고 그것이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면 시행한다.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한다'는 의사들의 일반적인 판단법과 꼭 같다. 다만 그 시기가 환자의 임종기라고 판단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침습적인 시술이 환자의 생명연장이나 증상호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환자의 컨디션이 그것을 견뎌내기 힘들 것이라 판단되면 시행하지 않는다. 상식적인 판단이다. 의사 2인이 환자를 임종기라 판단했을 때, 환자가 연명의료에 대해 표명해둔 의사가 있다면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그 환자에게 연명의료라고 판단되는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문서의 핵심이다. 따라서 임종기 판단이 중요할텐데 쉬운 일은 아니므로, 의사들은 말기, 임종기 판단 시 환자의 경과와 상태를 연속적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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