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구했던 그에게

by 달하

월요일은 직장인들에게도 힘들지만 환자들에게도 만만치 않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주말을 즐겁게 보냈다면 환자들은 주말 동안 통증을 좀 더 참아야 했다는 것. 그래서인지 월요일에 환자들은 더 아픈 것 같았다.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며 암성 통증을 조절하는 우리 진료실에도 일주일의 첫 날 유난히 환자가 많았다.


환자 B는 늘 월요일에 방문했다. 그가 진료실에 들어왔던 첫 월요일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며칠 전부터 심해진 울렁거림과 통증으로 힘들어했다. 호소하는 증상에 비해 지금 먹고 있는 약이 부족해 보였다.

진료를 마치자마자 그는 물어볼 게 있다며 함께 온 아들에게 잠깐 나가있어 달라고 했다. 이 말에 나와 함께 진료를 보던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도 의자를 환자 쪽으로 당겨 앉았다.

아들이 나가자마자 그는 뜸 들이지 않고 이야기했다.


나를 좀 빨리 죽여줄 수 있나요?

내 눈은 둥그레졌고 환자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하고도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아프니까 자식들이 도움을 주긴 하지만, 의지하기도 싫고...... 그렇게 아팠지만 오늘도 제가 운전하고 왔어요. 여태까지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너무 힘드네요. 그래서 그런데, 나를 좀 빨리 죽게 해 줄 방법이 있나요?


"그런 생각을 하신 거 보니 많이 힘드셨나 봐요."

간호사 Y가 답했다.


그는 몸과 마음 모두가 지친 것 같았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들은 하나만으로도 견디기 어렵다. 울렁거림이 24시간 동안 지속된다면 어떨지. 임신을 했을 때 잠깐 경험했던 것으로나마 유추해 본다면 그야말로 죽을 맛일 것이다. 잠을 자다 깰 정도의 통증은 또 어쩐담. 그 나날들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즈음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필연적으로 독대하는 실존적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살아가는 동안 분명 필요한 질문이나 환자들에게는 이것이 삶의 의미 상실에 이어서 찾아오므로, 그 질문의 답이 '죽어야겠다'로 이어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자식과의 화해 같은 일을 해내기 쉽지 않다. 당장 내가 너무나 괴로우니 주변에 짜증을 내고 또 그런 자신에게 자책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악순환이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들과 함께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 노력한다. 정말이지 적극적으로. 이것은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에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렇게 이야기한다.


암이 너무 괴롭혀서 환자가 짜증을 내는 거지 일부로 그러시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함께 통증 조절 먼저 해봐요.


그날 진료에서 B가 먼저 그렇게 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나는 이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우리나라는 안락사가 금지되어 있어요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현문우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대신 Y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을 하신 거 보니 많이 힘드셨나 봐요.


Y는 대답 후 그에게 의자를 더 가까이 당기므로 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행동으로 보였다.

당신의 힘든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세요라는 몸짓으로.


환자 B는 방문했던 모든 시간 동안, 그가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진료실을 나가며 그의 얼굴은 후련해 보였다. 우리는 1주일에 한번, 월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앞으로 증상조절은 우리가 함께 할 거라고. 나는 그렇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죽고 사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지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에 힘을 보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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