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남자

by 달하

언제부턴가 말이 잘 안 나왔다. 내 언어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무렵이었을까. 좀 더 정확한 단어로 말하려고 머릿속을 헤매다 입을 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말수가 적어졌다. 대신 눈물이 많아졌다.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울었다. 나는 눈물이 자신을 드러내는 곡선형 방식이 좋았다. 다른 사람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들지 않더라도, 표현되지 못한 내가 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 병원에서 제일 많이 우는 의사였다. 의사는 절대 울지 말아야 한다고 훈련받았지만 쉽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냄은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배워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에 '울면 탈락'이라는 점수 체크 지침이 있었다면 나는 분명히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지금보다 어렸던 전공의 시절에는 미숙하게 보일까 봐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머문 지난 10년 간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연습할게 아니라 정교하고 기품 있게 드러내는 법을 연습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에게 잘 조율된 감정이 전문성을 배가시킬 것이라는 생각도.


내과 수련을 마치고 나서 이제 울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웬걸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을 완화의료호스피스센터였다. 그곳에서 전임의를 하는 동안 임종방으로 환자들을 옮기며 보호자들이 대성통곡을 하면 같이 통곡했고 조용히 울면 나도 소리죽여 울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환자를 앞에 두고 함께 눈물을 반짝일 때가 많았다. 울지 않을 일을 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말을 잃은 나를 이끈 건 아마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내 삶이었나보다.


그럼에도 내가 이를 악물고 울지 않으려고 하는 시간은 외래 진료시간이었다. 환자들 대부분은 혈액종양내과에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우리에게 왔다. 외래 진료실에 마뜩잖게 앉아있던 환자들은 그간 받은 치료가 형편없었다고 화를 내거나 체념한 듯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간혹, 이제 그 힘든 항암치료를 더 이상 안 하게 되어 가뿐하다고 말하는 환자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서려있었다. 외래 진료시간에는 그런 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 사용법을 이해시켜야했고, 항암치료가 종료된 이후 시간들을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지 상의해야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잘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았으므로 나는 모노톤의 감정선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단조로운 얼굴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날 중년 남자 L도 단조로운 표정으로 진료실로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고 나는 그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L은 그런 나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고쳐 앉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단조로운 얼굴이 나의 꾸며낸 그것과는 다름을, 그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여러 감정들이 체로 걸러서 그것만이 남아 있었다.

"LG구본권 회장도 연명의료 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전부터 나는 연명의료 안 하기로 생각해 두었습니다."

이윽고 남자는 함께 들어온 딸을 밖으로 내보냈다. 약을 타두라는 말과 함께 . 그리고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 딸 다 입양했어요."

"우리 딸은 대기업 연구원인데 비행기를 얼마나 많이 타고 다니는지 모릅니다. 제가 택시운전을 38년 했는데, 많이 모은 건 없지만 집은 있고 자식들에게 몇 푼이나마 물려준 돈은 마련해 두었습니다. 납골당도 다 알아보았고요. 형제자매가 7명인데, 다들 사이가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하니 내가 희생을 좀 하긴 해야 되더라고요."


그는 외래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의식했는지 지난 38년간의 자신의 역사를 짧게 이야기했다. 아마 그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찾아 배열해 말했을 것이다. 그때 L의 표정이 어땠더라. 지그시 눈을 감았던 것 말고 미소를 띠었었는지 얼굴을 찡그렸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그는 딸이 진료실 밖으로 나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몇 번 확인하고는 우리 아들, 딸 다 입양했어요라는 말을 시작할 때부터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문장들에 울음이 배어있었기에 사실 그의 표정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우는 그의 모습에서 내게 말로 다 하지 못한 그의 역사와 서사가 조용히 땅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진료가 끝나고 그는 딸과 함께 진료실을 나갔고 나는 그에게 필요한 약들을 처방했다.


선생님 어차피, 태어나면서 죽음도 함께 태어난 겁니다.


진료실을 나가며 L이 나에게 남겨준 그 문장을 진료기록에 적고 싶었다. 문장을 적었다 지웠다 몇 차례 반복했다. 그의 현재 상태를 그것보다 더 잘 알려줄 수 있는 문장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날의 L은 어떤 증상이 있었고 어떤 약을 먹었다같은 문장들에 묻혀 '환자가 울었다'라는 문장으로 짧게 적혔다.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지 않도록 하는 우리의 훈련방식은 타인의 감정을 적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게 남겨지지 않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나는 중년남자 L이 진료를 받는 짧은 시간동안 작은 공간에서, 그리고 처음보는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병력을 바라보았고 눈물로써 그것을 재해석해냈다고 생각했기에 그 기록이 못내 아쉬웠다.


그가 앉아있던 곳, 바닥에 흐른 눈물을 티슈로 닦아냈다.

그날은 외래 진료실에서 나도 조금 울었다.




그림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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