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얼굴이...... 좋네?"
친구의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할퀴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 되었을까요?"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 달 전, 60세 남자가 스트레처카에 누워 진료를 받으러 왔다. 그는 척추로 전이된 암 때문에 하지를 움직이진 못했지만 총명하게 본인의 의사를 전달했고, 누워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였다. 나는 그에게 힘들게 하는 증상을 묻고 약을 처방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한 달 뒤, 아내가 대진 서류를 구비하여 혼자 내원했다. 환자는 스트레쳐카에 타는 것 마저 힘들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이 벌어놓은 게 있어서, 24시간 개인 간병인을 두고 있어요."
도움을 받을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모두 받아야한다고 얘기하며 그의 일상을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아직은 누워서 이야기도 나누고 스마트폰도 하고 해요. 먹을 거요? 블루베리, 소고기, 보리굴비 이것저것해서 먹고 싶어 하는 것들 위주로 해 주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들은 다 마련해보려고 살피고 있어요."
간병인이 토요일, 일요일에는 쉬기 때문에 주말 남편돌봄은 온전히 아내 몫이었다.
"6시간마다 CIC(도뇨관을 넣어 소변을 배출시키는 것)도 하고, 욕창 생기지 않게 2시간마다 자세 변경 해주고 있어요. 마사지도 하고요.... 그래도 저는 간병인이 있어서 그나마 수월하지요. 감사한 일이에요.
제가 온전히 간병을 했으면 서로 미운모습과 악만 남았을 것 같아요. 네, 감사한 일이 맞아요."
자신의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다 보호자 A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얼마 전에 친구가 병문안을 왔어요. 문 앞에서 맞이하는데 저를 보더니, '그런데 너는 얼굴이 좋네?'라고 하더라고요."
문 앞에서 멈춰버린 아내와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말에 담긴 속뜻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말을 내뱉었다. 무심결에 그랬다고 이해해주기 쉽지 않은 말이었다.
"그럼 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을까요?" 친구의 한마디에 그녀는 죄인이 되었다. 아픈 환자를 돌보며 그녀가 타인의 '말'에 예민해져 있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친구의 말에 아쉬움이 남았다. 친구가 "남편이 아픈데 너라도 얼굴이 수척해지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내의 이야기에 며칠 전 병실에서 면담을 하다 우연히 들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남편이 죽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아내가 얼굴에 곱게 분을 칠했더라고." 그리고 이어진 알듯 말듯한 눈빛 교환.
환자의 보호자들은 항상 화장기 없는 얼굴, 거칠거칠한 피부, 충혈된 눈, 피곤한 얼굴이어야 할까.
화장을 곱게 한 얼굴은 환자를 덜 사랑하고 덜 위하는 마음일까.
외면으로 사람을 지레짐작하고 폄하하려는 행태가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보호자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보호자가 잘 먹어야 됩니다. 운동도 할 수 있으면 해야 되고요. 보호자가 지치면 환자도 힘들 수 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보호자들은 늘 마음이 편치 않다. 어쩌다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갔가다 우연찮게 환자가 열이라도 나는 날에는, 그렇게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도 없다. 그간 환자를 돌보았던 공이 무색하게 '아픈 사람을 두고 쏘다니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픈 사람도 사람이고 보호자도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상식 없거나', '돼먹지 못한'사람 취급하기 일쑤다. 우리 사회가 보호자들에게 내뱉는 말들을 보면, 마치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좋은 얼굴이 아니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 사람도 잘 살아야 한다고 말로 잘 표현해 낼 길이 없다면 그냥 말을 하지않고, 눈빛으로 응원하는 게 어떨까. 그리고 오늘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런지.
그녀의 얼굴이 계속 좋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말로그 얼굴에 그늘이 내리지 않길 바란다.
*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