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계 중환자실 코드 A. 내과계 중환자실 코드 A.
코드 A 방송에 급하게 뛰어내려와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간호사들이 환자들 자리에 커튼을 황급히 치며, 이동용 카트에 약물을 확인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심폐소생술은 진행중이었고 나도 그 환자에게 달려가며, 다른 환자들이 그 장면을 볼 수 없도록 커튼을 다시 확인했다. 고개를 돌리다 커튼이 열려있는 자리, 거기에 앉아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멀지않은 그 자리로 다가갔고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상황이 급한지라 눈인사를 하고 커튼을 닫았다.
심폐소생술은 실패했다. 예측된 실패였다. 환자의 상태가, 중환자의 생사를 좌우하는 폐, 간, 심장이 심폐소생술을 해도 돌아오기 어려운 상태였다. 내 환자였기에 그의 몸이 가고 있는 방향을 모르지 않았지만 보호자들의 요청이 있었기에 하는 수 없었다.
사망선고를 하고 여러 약물들을 주입하기 위해 필요했던 중심정맥관과 숨을 위해 기관에 넣어둔 관을 차례차례 제거했다. 정리가 얼추 되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는데 아까 커튼을 치며 만났던 할머니가 손짓을 했다. 그렇게 나는 김이분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아가씨, 나 여기서 좀 나가게 해 줘. 이름표를 힐끗 보니 호흡기내과에 입원 중인 환자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나 붙들고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어르신, 제가 담당의가 아니어서 뭘 해드리기 어렵네요, 담당 선생님에게 물어볼게요.
중환자실에서 자주 보는 섬망 상태는 아닌 것 같아 호흡기내과 전공의에게 물었다.
중환자실에 김이분 할머니인가, 정신도 말끔한 것 같고 식사도 하시던데 일반병실로 왜 못 올라가고 있으셔?
할머니 담도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있는 상태인데, 일단 폐렴은 잡힌 상태여서 병실 옮기려고 계획 중이에요. 병실이 없어서 일단 대기 중인데 가족이 없어서요. 일단 지금 원무과에 가족 찾을 수 있는지 물어봐 놓았어요. 그가 힘없이 대답했다.
가족이 없는 혼자 사는 사람들. 독거라는 말은 풀어보면 단지 혼자 산다는 의미인데 ‘노인의 독거’는 그들의 안위와 직결되기에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남녀노고 막론하고 가족이 없으면 입원도 어려울뿐더러 병실을 옮기는 것, 심지어 퇴원도 어렵기 때문에 '독거'는 담당의들에게 여러모로 한숨이 나오게 하는 단어였다.
며칠 뒤 호흡기 내과 전공의가 말했다.
선생님, 72세 김이분 님이라고 그때 물어보셨던 환자 있죠? 저희 쪽 폐렴 치료는 끝나서 이제 선생님네 파트로 전과해야 될 것 같아요.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 협진은 드려놓았어요.
그렇게 김이분 할머니는 내 환자가 되었다.
할머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누렁이 걱정이었다. 중환자실에 누워 죽을 고비를 넘긴 자신의 상태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다는 그저 누렁이뿐이었다. 증상을 묻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줄곧 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도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아차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은 꼭 내가 생각했던 것을 여쭤보리라 다짐하고 할머니의 누렁이 얘기 사이를 조심히 비집고 물었다.
어르신 지금 몸 상태가 어떤지 아세요?
나? 이제 폐렴도 다 나았고, 밥 잘 먹으면 퇴원하는 거 아니야?
아, 호흡기내과 전공의가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말씀 안 드렸구나...... 욕이 나오려는 입을 막았다. 할머니의 그 대답은 그 전공의가 불성실했음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말기암 환자에게 현재 상태를 전해야 하는, 일명 '나쁜 소식 전하기'는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으므로 그의 무책임함이 공감되었다. 나쁜 소식에 '나쁜'이 문제야...... 우리 세계에서는 많은 진단명들이 '나쁜 것'에 속해있었기에 그것을 전달해야 하는 우리들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기도 전 언어가 주는 어려움의 벽을 느꼈다. 잠깐 방향없이 툴툴거리다가 할머니의 차트를 다시 살폈다. 내가 할머니에게 잘 이야기해야겠다. 올해만 해도 할머니는 폐렴으로 세 번 입원했고, 세 번째에는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다. 환자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교수님과 나는 그녀에게 당신의 상태를 잘 말씀드리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정신은 또렷했고 웬만한 젊은이들만큼 이해력이 높았다. 그랬으므로 노인들의 나이, 그 숫자만 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지레짐작은 금물이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정보제공을 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의료진의 게으름을 떠나 '방기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지금 몸 상태에 대해 어디까지 들으셨어요?
내 질문을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할머니는 또 누렁이 얘기만 하셨다.
김이분 어르신, 지금 몸 상태가 좋지 않아요. 몸속에 암이 있어요. 쓸개 쪽에 있는 암이 폐까지 가 있어요. 숨이 답답하고 한 것도 이것 때문이고 폐렴도 자주 걸릴 수 있어요.
몇 초간 침묵이 흘렀고 할머니가 불쑥 말을 꺼내셨다.
중환자실에서 내 옆에 할머니가 폐렴이라더니 갑자기 목구멍에 뭘 끼우던데, 그때부터 아무 말도 못 하고 잠만 자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
심폐소생술 중 임종을 맞은 옆 할머니가 생각나신 모양이었다.
난 그렇게는 안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나즈막히 말했다.
그리고 며칠간 이분 할머니의 컨디션은 괜찮았다. 그런 만큼 할머님의 누렁이 타령은 심해졌고 이유는 함구한 채 외출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허락 안 해주면 그냥 갔다 올 거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셨다.
어르신 그럼 아침 주사 맞으시고, 저녁 식사하기 전에 돌아오셔야 돼요.
할머니는 알겠노라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셨고 신나게 외출복을 입으셨다. 노랑 치마를 입은 할머니는 그 순간만큼은 환자 김이분이 아니었다. 스테이션에 앉아 오더를 내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지난 번 중환자실에서 처음 만난 그때처럼 손짓을 해주셨다. 잘 다녀오겠다는 듯이.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이 순간 시간이 멈췄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