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박대 전문 S

by 달하

84병동 환자분은 내일 다시 가봐야 될 것 같아요.

왜요? 의자에 누운 듯 앉아있는 나를 보며 간호사 H가 물었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요.


오늘은 아침부터 문전박대다. 이제 익숙할 때도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내쳐지는 경험은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며칠 전 환자들에게 '자꾸 내쳐진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우리 센터 교수님이 말했다.

그럴 땐 마음속으로 '일이 줄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고, 일단 뒤돌아서 나오세요. 우리 볼 환자분들도 많잖아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렇게 해야겠다 다짐했건만 오늘 아침에도 막상 그러지 못했다.

아침에 만난 말기암환자 김병길 할아버지는 완화의료센터 의사입니다라는 내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침대 옆 간이침대에 앉아있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야, 필요 없다고 가라고 전해드려라.

나는 바로 발길을 돌려야겠다고 생각 했지만 막상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머문 3초가 30분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다음에 올게요. 하고 도망치듯 병실을 나왔다.

놀라셨겠어요. 저도 몇 년 동안 일했지만 그런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들은 H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협진의뢰된 환자들의 목록을 점검하며 오늘 오후에는 H와 함께 환자들을 면담하러 다니기로 했다.

두 분이 나이도 비슷하고, 진단명도 교수님도 같네요. 협진 환자들 중 30대 여성 두 명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 둘은 병실까지 같았기에 순간 담당의가 의뢰해야 할 환자를 착각했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었을뿐더러, 각 환자의 예상되는 경과를 적은 내용을 보니 두 명을 각각 의뢰한 것이 맞았다. 이런 상황은 흔치 않았기에, 어떻게 그들을 만나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머릿속이 분주했다. 환자들을 보러 가기 전 발걸음을 재게 놀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나는 뜸을 들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랑 비슷한 나이임을 확인하고 약간 울렁임이 일었던 것도 같다.


오늘따라 나와 H는 아무말 없이 병원 복도를 걸었다. 이윽고 두 환자가 있는 67병실 앞에 도착했고 나는 병실 앞에서 이름표를 재차 확인했다. 마침 병실 한 귀퉁이 화장실에서 두 여자가 나오고 있었다. 검고 바짝 마른 얼굴에 만삯 임산부처럼 배가 부른 젊은 여성을,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뒤에서 부축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여성은 환자의 어머니 같았는데, 우리를 보고 도리질을 하더니 젊은 여자가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 몸을 돌렸다. 갑작스러웠다. 둘의 몸이 기우뚱하여 부축하러 다가갔지만 내 손을 피하려는 모습에 나도 발걸음을 멈췄다. 다행히 그들은 넘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몸짓에서 거부의 뜻을 본 듯했으나 그냥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완화의료센터에서 왔습니다. 저는 의사이고 이쪽은 담당 간호사예요. 천천히 나오세요. 내가 말했다. 내 말에 어머니는 앞 서 보인 자신을 행동을 말로 정확히 표현했다.

필요 없어요, 가세요.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은지 간호사 H는 그럼 다음에 올게요하고는 발길을 돌렸고, 나는 또 몇 초간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맞은편에 있던 한 남성이 보고 있다 문 밖으로 나가는 우리들을 쫓아 나왔다. 그는 우리가 만나려 했던 두 30대 환자 중 한 명의 남편이었다. 그는 아내에 대해서 자신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다행히 환자의 남편을 통해 현재 그녀의 마음상태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 봐요!

간호사 H는 그런 나를 보며 씩씩하게 말했다.

P환자 아시죠? P환자 어머니가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자꾸 병원 직원 맞냐고 물어보셔서 신분증도 보여드리고 했었어요. 어디서 선교하러 나왔는지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왜 또 여자 둘이 그렇게 같이 다니냐고.

두 번째 만남부터는 우리를 반겨주시는 P환자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와 H는 그제서야 크게 웃었다. P환자의 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로 궁금하여 물었을 것이다.

둘이 선교하러 다니느냐고.

우리는 종종 재미있는 오해를 받았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면, 딱 한 번만 나눠보면 모든 오해가 사르르 풀릴텐데. 그 이후부터는 우리랑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기다리는 환자들도 많은데, 그 '한 번이' 어려운 분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병원 전산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환자들의 서사가 궁금했고 완화의료를 하는 의료진들에게 '그런 이야기'들은 특히나 더 중요했으므로, H와 함께 면담 다니기를 좋아했다. 이렇게 여자 둘이 다니니 그런 오해들도 있었나보다. 환자들의 '행간'. 그 행간을 채우기 위해 첫 면담에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물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병을 진단받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치료를 받으며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힘든 것은 누구와 주로 이야기 나누는지 같은. 그저 질문을 주고 받고 답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뭐랄까, 그 시간은 한 사람이 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이 병원에 우리같이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없을 거예요.

나는 웃으며 H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오해를 받거나 문전박대 당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환자에게 우리는 낯선 존재일뿐더러 완치를 위한 치료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우리 병원의 특성상 우리가 등장하는 시기가 더 그렇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그들을 만나러 가는 때는 환자들에게 더이상 치료받을 항암제가 없거나 있더라도 몸이 너무 쇠약한 때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등장으로 자신의 상태를 재확인하게 되는 그 상황이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왜 이렇게 문전박대 받는가 생각하다가 에이 뭘 또 문전박대를 받는다고 생각해?라고도 하면서, 마음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을 처음 만난 날부터 질문에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시며 자신의 생을 들려주시는 환자, 보호자가 더 많다. 따지고보면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 단번에 곁을 내주지 않는 환자분들을 만나면 일단, '오늘은 일이 줄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외치고 내일 한 번 더 들르면 되지.

'일이 줄어서 감사합니다'란 말은 처음엔 좀 야박하다 생각했지만, 그말을 읖조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이거 별일 아니야, 내일 다시 가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일이 줄어서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와 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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