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방에서 형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후원인에게 기부금을 받았다. 덕분에 벽지와 바닥을 따뜻한 색감으로 바꾸고 보호자용 간이침대를 새로 들였다. 새롭게 단장하겠다고 외친지 8개월 만의 쾌거였다.
8개월 전 나는 이른바 "임종방 환경 개선 사업"을 해보자는 특명을 두 손 들어 환영했다. 편안한 임종을 목적으로 배정된, 병원 내 하나밖에 없는 1인실이라는 희소성을 빼면 그곳은 누가봐도 허름했다. 초라한 방을 보며 기부금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보겠노라 의욕을 앞세웠다. 하지만 건축과, 설비과와 여러 차례 회의하며 몇 개월을 보내자 피로가 몰려왔다. 괜히 내가 나섰나 싶었다.
귀찮다고 아우성치는 마음을 달래며 병동으로 발을 이끌었다. 그 방을 어떻게 바꿀지 점검해야 했다. 다행히 임종방이 있는 19층 병동에 도착하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어디부터 손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청소 여사님이 들어오셨다. 환자들을 옮기며 자주 인사를 나눴던 아주머니였다.
"청소하러 들어가도 되나요? 오늘은 당장 옮길 환자가 없다고 해서 이 참에 화장실 한 번 더 청소하려고요."
"안녕하세요. 네 그러세요. 저는 그냥 둘러보고 있는 중이라서 편하게 하셔도 돼요."
인사를 나누다 보니, 문득 머릿속에 전구불이 하나 들어왔다. 청소여사님께 물었다.
"여사님, 혹시 보호자들이 임종방 사용하며 불편하다는 게 있었나요?"
"아, 이 방은 테이블이랑 의자가 너무 무겁고 너무 딱딱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호자들이 발 뻗고 누울 곳도 없고." 그녀는 보호자들이 의료진에게는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임종방 앞으로 어떤 분이 기부금을 주신다고 해서 가구도 바꾸고 방도 꾸며보려고요."
"그래요? 정말이지 좋네요. 이 방을 쓰는 보호자들은 마음이 더 무거울 것 같아서 깨끗하게라도 해 드리자는 생각에 쓰레기통도 자주 비우러 오는데,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해도 영 표가 안 나요. 커튼도 색이 우중충하고 보호자 침대도 낡았고 저기 성경책이랑 불경책도 너무 오래된 것 같던대요."
청소여사님은 방 곳곳을 소상히 알고 계셨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을 하나하나 꼭 집어주셔서 적잖이 놀랐다.
"저는 이 방이 우리 병원의 자랑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병원에 이런 방이 있다는 것도 좋고, 내가 여길 청소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 말을 들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죽음을 실패로 생각하는 의사들에게 임종방은, 환자가 가게 해서는 안 되는 곳이자 죽음이라는 의학의 한계를 직면하게 하는 공간이다 . 또한 매년 적자를 내어 경제 논리로만 따지자면 우리 병원에서 없애야 할 1순위로 늘 도마에 오르곤 한다. 그럼에도 이 공간의 중요성을 아는 의사들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임종방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이 이곳을 지킨다. 또한 청소여사님 같은 직원들과 이곳을 거쳐간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 공간에 마음을 내어준다.
임종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데 코 끝이 찡해졌다. 몸으로 전달된 숙연한 마음이 내게 어떤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청소여사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방이 우리 병원의 자랑이라고.
그 마음이 모여 종국에는 임종방이 더욱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리라 믿는다. 모두가 함께 지켜가고 있는 이 공간. 한 때에는 가족실, 한 때에는 느티나무방이라 불렸던 이곳이 병원의 역사가 되어 우리 병원을 지킬 것이다.
이 공간은 우리 병원의 임종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