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챙겨먹으라고

금줄같은 말 한 마디

by 달하

"이제 아기가 언제 나와도 괜찮은 때네요. 주수에 맞게 몸무게도 잘 늘었어요. 오늘부터는 걷기 운동도 30분 정도씩 하는 게 좋겠어요."

불안과 안도가 동시에 드는 말이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내 배 위에 칠했던 초음파기기용 젤을 닦아내며 말했다. 내 뱃속 아기는 38주 3일 차였고 퉁퉁거리는 발차기와 그득해진 무게로 자신의 존재를 뽐냈다.

작년에 이어 2020년에는 뱃속의 아가와 함께 임종방으로 많은 환자들을 옮겼다. 대부분이 우리 병원의 '자문형 호스피스'에 등록되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이루어진 완화의료팀에 지속적인 돌봄을 받던 분들이었다.


그날도 임종방으로 환자를 옮기고 가족들에게 임종이 임박한 때 나타나는 증상들을 설명하려고, 방문을 조용히 열던 참이었다. 살며시 들어가는데 익숙한 손이 내 옷깃을 잡았다.

"선생님 이렇게 만삭인데, '이런 곳'에 들어와도 되겠어요?" 전부터 여러 번 면담을 해왔던 환자의 아내였다. 안되지 않겠냐는 목소리였다. 이 금을 넘으면 생명이 지고 있는 곳으로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그때 그녀의 마음은 마치 대문에 금줄을 다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괜찮아요!" 나는 온몸으로 괜찮다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가래 끓는 소리가 날 수 있어요. 그건 환자분이 침을 삼키지 못해서 나는 소리고 일부러 석션을 해서 빼낼 필요는 없습니다. 표현은 하지 못하지만 전신이 괴로울 거예요. 그래서 지금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는데 더 힘들어 보이면 진통제 양을 늘릴 거예요."

환자의 아내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드리는 중에도 뱃속 아가는 퉁퉁거리며 잘도 놀았다.


병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녀는 만삭인 내게 본인이 앉아있던 자리를 내어주며 말했다.

"힘드시겠어요. 여기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세요." 병동 환자들을 보러 다니는 정도로도 숨이 차 민망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순간이었다.


일터에서 내가 처음 임신했다는 것을 알렸을 때, 누군가 물었다. '매일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뱃속 아가한테 안 좋지 않을까요?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20년 차 베테랑 간호사 J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선생님 내가 그간 말기암 환자들 수천 명을 보면서 애 둘을 낳았는데, 애들 아주 건강히 똘똘하게 잘 컸어요. 아무 걱정 마세요."


두 해 동안 많은 환자와 보호자, 동료들까지 나에겐 모두가 나를 지켜주는 금줄 같은 사람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로 몸짓으로 금줄이 되었다.

"식사 꼭 챙겨드세요." 같은 말 한마디가 서로를 지켰다.


죽는 것과 태어나는 것.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 가는 길목에 우리들이 함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이것은 큰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서로를 보듬고자 했던 말들이 가장 풍성했던 이곳에서 아가를 품었던 것이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리와 나눈 이야기들로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선 이가 따뜻한 위안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모습을 봐 왔기에 그 일면식으로 죽음이 낯선 이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슬픔은 낯설수록 더욱 힘들기에, 낯설지 않은 우리가 잠깐의 도움을 드린다.

환자와 보호자, 함께 일했던 간호사들과 사회복지사들은 동료이자 스승이었다. 낯선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서게 하는 그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오늘도 말한다. 우리가 나눈 감사해요.라는 말은 가장 강력하고 따뜻한 금줄이 되어 우리가 각자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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