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도 없는 내가 합장한 손으로 하느님을 찾는 때는 환자를 '임종방'으로 옮길 때다. 일부 혈압이 떨어지거나 숨이 부족한 환자들은 임종방으로 이동하다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병원에서 환자를 임종방으로 옮겼던 2년 간 나에게도 그런 환자가 2명 있었다. 한 환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다 스트레쳐카 위에서 심장이 멎었고, 다른 환자는 응급실에서 19층으로 올라오던 중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런 환자들을 옮길 때면 마음에 힘을 보태려고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무사히만 옮겨간다면 내게 주어진 복들이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내가 평소 '다행이야'를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 간 임종방으로 옮겨졌던 수많은 환자들 중, 이동하다 명을 달리한 환자가 단 둘뿐이었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내가 '이동 중 사망'을 걱정했던 환자 중에는 동림할머니도 있었다. 그녀는 기저질환인 유방암이 뇌로 전이되었고 승압제를 사용해야만 혈압이 겨우 유지되는 상태였다. 협진의뢰서에는 환자가 의식이 없고 스스로 호흡을 하지 못하므로, 현재 사용 중인 인공호흡기가 연명의료에 해당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기록만 보아도 머지않아 임종이 예견되는 환자였다. 나는 서둘러 중환자실로 향했고, 마침 오전 면회시간이라 그녀의 첫째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나를 소개하고 환자 상태를 점검한 후 우리는 중환자실 구석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는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오가는 내내 함께 했기에 그녀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보호자에게 환자에 관한 여러 사항들을 질문했고 이어서 그의 생각을 물었다.
"현재 아드님이 제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을 만나는 모든 보호자들에게 던지지만 그들의 십중팔구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가족들은 환자가 죽음에 이를 때 무엇을 원했을지도, 혹은 무엇을 원치 않았을지도 대부분 모른다. 내 질문에 아들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어머니를 고향으로 모셔가고 싶어요."
아들은 이미 여러 번 생각했다는 듯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그는 어머니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남편과 함께 일생을 지낸 그곳에서 임종을 맞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분명 좋아하실 거라는 말과 함께.
이런 일을 하는 나보다 그가 훨씬 더 부모님의 의중을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아들의 말을 들으며 이내 궁금증이 해소됐다.
그건 동림할머니, 그녀 덕분이었다.
환자는 치료를 이어가며 정신이 명료한 때에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라고 분명히 의사표시를 해두었다. 그녀는 시간을 내어 말기판정을 받지 않는 환자들이나 병을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이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었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아들과 가족들에게도 전달해 두었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였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환자는 자신의 마지막 날 몸에 가해질 의료장치에 대해서 명확한 의견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몸을 지켰다. 그 어떤 도움으로도 자신이 생으로 돌아오지 못할 시점에, 도움이 되지 않을 의료장치들이 자신의 몸을 침범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들은 이런 어머니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한다고 했다. 동림할머니와 그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와 아들은 분명 삶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상대 중 누군가가 겁먹지 않도록 배려하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었을 그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졌다.
담당 의료진에게 보호자와 나눈 이야기를 전하며 동림할머니의 치료계획을 다시 상의했다. 의료진은 환자가 고향으로 가는 이동시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아들은 물론 그 누구도 이동 중 임종은 원치 않았다. 보호자와 신경외과 의료진은 다시 상의하였고 환자를 임종방으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으로 최종 의견을 모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 가족과 함께 하는 가운데 연명의료를 중단함으로써 환자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결정을 내린 날, 임종방은 비어있었다. 우리 병원 임종방은 비어있지 않을 때가 많았기에, 다행이었다.
'동림 할머니도 평소에 다행이야라는 말을 많이 읊조리셨나 보다.'
그야말로 다행이었다.
의료진들은 분주해졌다. 동림 할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임종방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이동용 인공호흡기를 준비하고 약물들을 점검했다. 혼자서 숨을 쉴 수 없는 환자였으므로 중환자실에서 사용하던 인공호흡기를 떼자마자 앰부백으로 산소를 공급했다. 앰부배깅을 하며 19층으로 향했고 병실에 도착하여 환자를 침대로 옮기기가 무섭게, 대기하던 간호사들이 이동용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곧이어 환자의 아들과 딸, 여동생이 임종방으로 들어왔다. 여동생은 오랜만에 언니를 보게 되었다며 조용히 울었다. 완화의료센터 간호사 H가 임종방에서 환자에게 해드리면 좋을 것들을 다정하게 전했다. 그렇게 하루동안 가족들은 환자와 함께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조심스럽게 임종방 문을 열고 들어가 환자상태를 살피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들은 환자에게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느라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비록 동림할머니의 눈은 감겨있었지만 간호사 H가 일러준 대로, 환자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며 '고맙고 사랑한다'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의 온기로 방안이 가득 차서 그랬는지 나도 다음에 이어질 일련의 일들이 두렵지 않았다.
환자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느냐고 보호자들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이 두렵고 후회되지 않겠느냐는 물음이었다. 내 질문에 그들은 '준비가 되었다'고 답했다. 나는 그녀의 아들과 딸,여동생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이동용 인공호흡기와 혈압상승제가 들어가고 있던 기계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온 사방이 따뜻하고 고요했다.
그렇게 그들 모두와 함께 자리를 지킨 지 20분이 지났을 무렵, 환자의 맥박이 약해지고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맥박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기계는 더 이상 환자의 맥을 잡을 수 없다며 삐 소리를 냈다.
- 김동림 환자, 2020년 6월 24일 11시 30분에 임종하셨습니다.
임종선언과 함께 그제야 가족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늘 임종방으로 환자를 옮기며 그들을 잃었지만, 어쩌면 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와 가족들이 마음으로 이 날을 기억함으로써 말이다.
이런 마지막이 동림 할머니가 그렸을 장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원치 않았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병원에서 죽는 것을 바라는 이가 어디 있을까. 임종 맞을 장소를 자주 떠올려보는 나도 그렇다. 내 상상 속 공간은 어느 바닷가 앞 고요한 곳이지 병원은 아니다. 그래, 나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대로 삶이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은 그대로 제 길을 가더라도, 그 길 끝에 꽃잎을 뿌릴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동림할머니처럼 한다면, 그녀처럼 한다면 말이다.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혹은 늦게,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안길 자신이 있다.
그녀가 자신이 가는 마지막 길에 뿌렸던 꽃잎들은 바람에 흩날리다 온 세상을 뒤덮는 꽃비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