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임종방, 우리의 방으로 들어가며

by 달하

내가 환자들을 19층 끝방으로 옮길 때 그들은 죽어가거나 죽은 상태였다. 전자는 보통 일반 병동에 있던 환자들로 담당의료진의 늦은 의뢰 또는 보호자의 후회 섞인 미련 때문이었고, 후자는 중환자실에서 이송된 환자들로 현대의학의 가능성을 끝까지 타진해 본 결과였다.


환자들은 일반 병동, 중환자실 그리고 응급실에서 하루에 한 명 꼴로 그 끝방, 소위 임종방으로 불리는 공간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은 한 때 느티나무 방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나는 지금의 임종방이란 이름보다는 느티나무방이 더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 방을 관리하는 역할이 주어졌을 때 찾아봤던 느티나무의 모습이 적당히 웅장했기에 말이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의악화로 음식을 먹기 어려워지는데 그때 투여하는 수액 때문에 전신이 부어있기 마련이다. 일부 응급실에서 이송된 환자들, 특히 말기암 환자들은 앙상하기도 했는데, 그런 그들에 반해 느티나무의 모습은 너무 불어있지도, 너무 가늘지도 않아 보기 좋았다.


19층은 암병동으로 여러 진행 단계의 암환자들이 있었다. 주사 항암제를 맞는 환자의 일부가 이 198병동에 입원했고, 일부 환자들은 암 자체나 암 합병증으로 치료가 필요해 외래나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임종방은 이 병동에 속한 1인실이었고 암환자들은 늘 많이 사망했으므로 대부분 198병동 환자들이 우선적으로 이곳으로 옮겨졌다.


임종방으로 전실이 필요할 때 198병동 환자들이 우선 순위였으므로, 나는 그들이 큰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친하게는 아니라도 병실을 오고가며 눈인사를 건넨 앞 자리 환자가 의료진의 웅성거림 끝에 임종방으로 옮겨지는 날에는 병실 전체가 숙연해졌으므로, 그 병실의 존재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어땠을런지 모르겠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 방으로 가겠지라고 생각했을는지도.


그 방은 들어가면 반드시 죽어서 나와야 했다. 환자가 살아서 나온다는 것은 의료진이 판단을 잘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했거니와, 그 방에서 머물다 '살아서' 나오게 되면 머문 날 수에 50만원을 곱하여 1인실 비용을 그대로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3일을 머물되 죽어서 나오면 병실비 혜택이 있었고 살아서 나오면 그 혜택은 사라졌다.


돈도 돈이었지만 어머니가 며칠 내로 임종하실 거라고 듣고는 마음에 채비를 했을 보호자들이, 그녀가 살아 밖으로 나왔을 때 어떤 표정이었을지, 재고하기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 환자들이 임종방을 나와 보통 며칠 내로 임종하셨기에 보호자, 의료진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그럼에도 말기암환자가 그 병실에서 임종하면 1인실을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정부지원혜택이 있었고 무엇보다 1인실에서 환자의 임종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가족들이 그 방으로 환자를 옮기고 싶어 했다.


나는 임종방으로 환자를 옮기며 많은 희노애락을 느꼈지만, 의료진으로서 환자가 3일 내로 죽을 것인지를 가늠해야 하는 일은 늘 고통이었다. 이 방도 돈이 묶어놓은 사용법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므로 우리의 판단도 자유롭지 못했다.


병원입장에서 그 끝방은 매년 1억 원씩 적자를 내는 애물단지였다. 병원의 재무를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죽어가는 사람이 하루, 길게는 며칠간 점거하고 있는 이 방은 늘 개혁되야 할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대기 환자가 넘쳐나는 이 병원에서, 임종방은 자기의 역할을 해내며 잘 버텨나갔다. 만년 적자임에도 이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아마 사죄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1700개의 환자를 살리려는 병실 중 단 한 개, 사람을 잘 죽게 하려는 공간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에 대한 사죄. 그것까지 없애버리면 ‘이 병원에 죽을 사람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것일까 봐 걱정한 것은 아니었을는지.




형을 임종방으로 모셨던 어느 후원인이 그 공간을 밝게 꾸미는 데 돈을 지원해 준다기에 공간을 둘러보고 있던 어느 날, 그곳을 청소하는 미화담당 아주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임종방에 어떤 것들이 더 있으면 좋겠냐는 나의 질문에 아주머니는 말했다.


"여기 보호자들이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긴 의자 같은 거 있어야 되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매일 문 열고 조용히 들어가요, 환자랑 보호자한테 방해될까 봐. 살금살금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이 방은 우리 병원에 꼭 있어야 돼."


나는 그런 눈으로 그렇게 확신에 찬 말투로 임종방을 변호할 수 있을까.

아주머니는 누구보다도 그 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환자들에게서 나온 체액과 혈흔을 매일 닦고 그 방을 보듬는 이가 그녀였다. 그 방은 그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이에게 자신의 쓸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