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하 Jun 22. 2024

재가임종을 꿈꾸는 나.주어진 단 하나의 질문

그래서 얼마나 사랑하다 오셨나요?

『의료윤리학의 이론과 실제』의 저자이자 의사인 핫토리 켄지는, "벽에 똥칠을 하며 화려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책을 통해 말했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병원에서 임종할 경우, 그가 그러기 전에 의료진과 가족들이 제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년의 꿈이 쉽사리 제압당할 수 있음에 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에 비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집에서 임종하고 싶다'는 내 소망은 소박하다.


나의 소망

나는 집에서 임종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는, 그 모습을 꽤 오래전부터 그려왔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고 열망한다. 내가 그린 모습은 이렇다.


나는 통유리를 통해 정면으로 바다가 보이는 공간 속, 침대 위에 평안히 누워있다. 남편과 두 명의 아들 그리고 그들의 아내는 책을 보고 있다. 손주들은 마루에서 저마다의 상상을 서로에게 이야기하며 놀고 있다.(각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진 않기를!)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제 핫토리 켄지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차례다. 상상을 글로 옮기다보니 현실과 조우하며 '아차'싶은 지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인정한다. 내가 꿈꾸는 죽음에는 상당수의 비현실적인 가정과 조건들이 들어가있다. 생각나는 몇 가지만 해도 녹록지 않다.

우선 1) 바다 앞에 세컨드하우스가 있어야 하고 2) 남편이 살아있으며 3) 아들들은 장성해야 한다. 4) 또한 아이들이 가정을 꾸렸고 5) 자녀들이 있다.

어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겠냐 싶은데, 또 하나가 남아있다.


내 소망에 의하면 나는 노쇠하여 자연사하는 듯하다. 어쩌면 이것 역시 큰 욕심일지도 모른다.

사진: Unsplash의Jay  Cee


환자들이 집에서 임종하는 일.

대학병원 재택의료팀에서 일 했을 때, 임종이 임박한 말기암 환자와 그의 보호자를 여러모로 채비하여 집으로 퇴원하게 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환자, 의료진, 가족들이 합심했다. 집에서 증상을 조절하기 위한 약물처방부터 법적인 문서, 가족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까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집에서 임종하고 싶어 하는 환자들도 꼭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보단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임종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으리라. 가족들은 환자의 그런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했다. 보호자들은 돌봄이라는 가장 적극적인 사랑을 표했다. (환자를 집으로 모시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여건도 고려해야하므로.)


집에서 임종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확고한 의지와 그에 비견할 만한 돌봄 제공자의 인내가 필요하다. 가족 간의 합의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갑자기 나타난 둘째 아들이 병원으로 모시고 가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고 한마디라도 하는 날에는, 모두가 힘들어진다. 또한 가족이나 전문간병인에게 임종증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이 필요하다. 임종 시 나타나는 증상에 대한 지식은 환자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크지만 돌보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경감시키는 데도 중요하다. 그 외에는 필요한 것은 사후처리에 대한 정보인데, 내가 의사로 일하며 집에서 임종하는 것을 도왔을 때 특히 강조했던 것은 임종 후 119에 연락하시지 말라는 것이었다. 장례식장을 미리 알아두어 그곳으로 연락하고, 연계된 장례식장을 통해 사망진단서를 발부받는 방법을 안내받도록 했다.


위의 내용에 늘 한 마디 덧붙인 것이 있다. 위의 모든 사항이 준비되었어도 환자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면 응급실에 가시는 것도 방법이라고. 심하게 숨차하는 환자를 임종할 때까지 바라보는 것은 보호자들에게 심히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응급실에서 가서는 "우리는 집에서 임종을 모시려고 했었고,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씀드릴 것을 누누히 강조했다.  


여건이 맞지 않으면 집에서의 임종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호스피스 병원을 선택했다. 집에서는 돌볼 사람이 없다던가, 집에서 부모가 임종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충분히 공감되는 이유였다. 말기암 환자들은 암이 전이된 위치에 따라 통증이나 호흡곤란 등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그들을 편안하게 해 줄 곳은 호스피스 병원이기도 했다. 우리는 환자와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존중했다.  


환자들의 재가임종을 보며, 나도 내가 맘만 먹으면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구체화해 볼수록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집에서 임종하려면이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내가 집에서 임종하는 일.


다시 말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임종을 맞는 일,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말이지 끝장나게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희소식이라면,이 꿈은 2인칭으로 존칭되는 인물들을 사랑하면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3인칭 너머의 사랑을 생각하는 분들에겐 여느 모든 곳이 집이리라)


나부터 인정한다. 우리집안의 2인칭 인물들, 남편, 아이들만도 진심으로 챙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수 많은 헐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가족만 지켜내도 영웅이 되지 않는가. 불현듯 내가 의식을 잃었을 때 내 몸을 챙겨줄 사람, 그게 가족이든 지인이든 그들과의 관계가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가 임종의 꿈은 2인칭 인물들에 대한 사랑앓이로 마무리된다. 그래, 우선은 내게 가장 중요한 이것부터.


죽음을 생각하다보면 늘 삶을 생각하게 된다고.  집에서 임종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문장을 실감나게 한다. 그래, 어쩌면 사랑타령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자 끝이다. 마지막 삶의 문턱에서, 내가 받을 질문은 단 하나다.


"그래서 얼마나 사랑하다 오셨나요?"






대문사진: Unsplash의kino


매거진의 이전글 내 '소변주머니'에 대해 쓴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