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오래된 질문은 해마다 또는 생애 주기마다 여러 버전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과거 일기에서 나는 무슨 과를 가야 될까? 나는 어떤 일을 해야 될까?같은 '내가 원하는 것'을 좀 더 특정한 질문의 변주곡을 살펴보는 일을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질문에 맞는 답을 했으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쉽지 않지만 중요한 이 질문에 '현재'라는 단어 하나를 넣어 보았다.
내가 현재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고 원했던 것들을 늘 변했으며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달라졌다고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원해왔던 것들은 늘 변해왔으며
변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그것이 달라졌다고 해서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꿈꿔왔던 일을 막상 했을 때 이럴 수가, 이게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어도 전혀 실망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도, 괜찮다.
며칠 전 한 교수님과 밥을 먹었다.
"재택의료를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보는 것이 어떨지"에 대한 나의 질문에 그의 대답이자 첫 질문은,
“선생님이 원하는 건 뭔데요?”였다.
이전 같았으면 이 글은 보통 "내가 원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라고 급하게 마무리되며 여기서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 써보는 트레이닝 아닌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요즘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생각보다 술술 줄을 맞춰 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아 선생님 생각이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그건 말이죠…….”
유효한 질문한 유효한 답으로 나는 새로운 생각의 기반이 될 타격감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심리학자로서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너먼은 그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 두 개의 자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는 자아”와 “(현재를) 경험하는 자아”는 늘 결정에 있어 빅매치를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결과는 늘 기억하는 자아의 승이다.
인간은 현재를 경험하는 중에도 대부분을 기억하는 자아에 의존하여 선택을 한다. 기억은 결국 나의 관념, 고정된 생각 패턴 같은 필터를 거쳐 저장되기 때문에 이것을 레퍼런스로 하여 행동을 결정하는 기억하는 자아에 의존하게 되면, 결국 현재의 내 삶은 어리둥절해질 수 밖에 없다.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말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사실 많이 어렵다.
그래서 더욱 기억하는 자아에 눌려 쭈그러들어 있는 경험하는 자아를 위해 매일 시간의 한 꼭지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으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단계로, 내가 원하는 것을 떠올렸을 때의 "느낌"을 살펴보는 것 또한 어떨지.
네이버 지도에서 현 위치를 누르면 켜지는 레이더 모양이 바로 "느낌이 주는 방향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 당신은 현재 가고자 하는 방향의 바운더리 안에 있습니다.
그 안에서 걷다 보면 결국 화살표가 위치한 그곳으로 도달하게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오래된 질문을 매일 해보는 것, 그것이 내 삶을 울릴 타격감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