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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Jun 01. 2017

우리의 작고 귀여운 경쟁자들

평화로운 경쟁을 부탁해

2012년, 내가 처음 독일을 방문했을 그때, 마크는 나에게 형님과 형수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뱃속의 쌍둥이가 세상에 곧 나오기 전이었을 그때, 형님과 형수님 뒤에 숨어 수줍은 웃음을 짓던 첫째 요나단은 내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만큼 아름다워보였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파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마마(엄마)'하고 내게 달려오던 요나단은, 한국에 돌어와서도 내내 보고싶을만큼 사랑스럽게 내 마음에 들어왔다.


시간이 흘러 형수님 뱃속에서 쿨쿨 잠자던 쌍둥이는 작은 자전거를 끌고 온 동네를 돌아다닐 만큼 무럭무럭 자랐고, 요나단 또한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의젓한 큰 형이 되었다. '아다다다'로 모든 의사소통을 대신하던 요나단은 쉴 새 없이 '이건 뭐에요? 저건 뭐에요?'하며 질문을 쏟아낼만큼 훌쩍 자랐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 때였다. 나는 저녁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쌍둥이와 요나단을 데리고 집 근처 언덕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린 쌍둥이들은 길어진 산책에 마크와 형님의 무등에 올랐고, 요나단과 나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잠자코 나의 더듬거리는 독일어를 듣던 요나단이 내게 물었다.


Kannst du deusch nicht sprechen?
독일말 못 하죠? 그렇죠?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결국 알아차려버리다니. 요 녀석의 별 것 아닌 말 한마디가 가슴에 '콕'하고 박히던 순간이다. 그리고 나의 경쟁상대는 쌍둥이인 마리와 루카스로 변경되었다.




마크에게도 작고 귀여운 경쟁자가 있다. 바로 우리 오빠의 딸, 나의 조카 지우이다. 이제 조금씩 말이

늘어가고 있는 지우는, 마크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선의의 경쟁자이다. 언젠가 말문이 트일 지우를 경계하며 매일매일 퇴근길에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만세!


마크가 지우를 통해 가장 먼저 배운 말이다. 영상통화 속 지우가 '만세' 소리에, 두 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며 방긋 웃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 후로 한참을 만세놀이에 빠졌었다. 아직도 떡이랑 만두가 퐁당퐁당 빠진 라면을 먹자고 하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두 팔을 쭉 뻗으며 '만세'를 외치곤 한다.


오빠랑 새언니가 보내주는 사진을 볼 때마다 쑥쑥 크는 지우가 기특하기도 하고, 옆에서 자주 볼 수 없다는 현실에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지우가 '고모~'라 외치며, 독일로 날아올 순간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한국 갈 때마다 내 얼굴을 까먹었을까 봐 조마조마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보고 싶은 내 조카.




사실 지우가 태어나기 전 마크의 한국어 선생님은 우리 집 강아지 '자두'였다. 마크는 한국에 들를 때마다 오빠와 새언니가 자두에게 쓰는 언어들을 들으며, 새로운 말들을 배워가곤 했다.



앉아! 기다려! 먹어!


자두에게 간식을 줄 때 사용하는 이 세 단어가, 마크에게는 꽤나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하면 '기다려',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는 '먹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마디라고 더 써보려 노력하는 마크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다.


마크와 내가 집에 들를 때마다 격한 뽀뽀를 퍼붓는 자두. 마크를 향한 저돌적인 사랑의 표현이 가끔 거슬릴 때도 있지만, 마크가 그리워하는 우리 가족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우리 자두.




내 욕심으로는 마크가 비정상회담의 훈훈한 청년들처럼 유창하게 한국말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의 따뜻한 말들을 마크가 알아들었으면 좋겠고, 마크의 바른 심성을 마크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부모님이 알아차려 주셨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버리기가 힘든 것 같다.


이런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마크에게 한국어 공부는 언제나 1순위다. 출장으로 기차나 비행기를 타게 되면 언제나 챙기는 한국어 책, 매일 퇴근길에 휴대폰 속 작은 글씨들을 읽어가며 한국어를 공부하는 마크가 마냥 고마울 뿐이다.



나도 얼른 독일어를 잘 하고 싶다. 시부모님께 시시콜콜한 마크 흉도 보고 싶고, 마크 형님네 부부랑 밤이 깊도록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물론 지금도 마크의 입을 빌어 말을 전할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꼭 내 생각을 내 말로 표현하고 싶다.


처음 마크와의 진지한 관계를 고민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언어다. 둘 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니, 언젠가는 전달되지 않는 감정의 벽에 부딪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가끔 기적을 일으켜,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신비한 공기를 타고 서로에게 전달되는 순간을 느낀다. 때로는 불편하고 답답한 부분이 아쉽기도 하지만,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서로에 감동하고 감사할 수 있은 것도 우리가 가진 복이라 생각하며 살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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