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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이야기
by 달하달하 Mar 02. 2017

엄마의 대한민국

우리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조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나는 애국자가 되기에는 아직도 멀었지만, 내 나라를 떠나오니 나도 모르게 그곳의 소식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특히 작년 한 해는 전국이 들썩할 정도로 전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들이 많았으니, 여기 독일 땅에서도 자연스레 한국의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머나먼 땅에서 함께 공감해줄 동포는 없었지만, 나 또한 마음속으로 촛불을 들며 광장에 나가 있는 친구들과 오빠네 가족들을 응원했다.


이로 인해 처음으로 남편과의 대화 주제에 '정치'라는 영역이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자주 비교되는 여성 지도자, 메르켈이 있는 나라 독일.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의 정치가 매우 궁금한데, 내 또래의 독일 친구들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내 남편 마크 또한 그러하다. 다만 '메르켈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그의 유일한 의견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엉망진창 나라를 망쳐놓는 사람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지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남편에게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성적인 독일 청년에게 나의 분노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던 모양인지, 남편은 '왜 그리 감정적이냐'며 나의 울분 섞인 발언에 전혀 공감을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전화통화를 나누던 중, 자연스레 내 최대의 관심사이던 대통령의 비뚤어진 정치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와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엄마의 의견이 궁금하기도 했다.


"글쎄, 엄마는 잘 모르겠어."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판타지 같은 이야기에 함께 분노해주기를 바라던 나는, 기운이 쭉 빠졌다.


"대통령이 다 잘못한 것은 아니라던데..."

아니, 이럴 수가. 우리 엄마는 TV와 신문도 안 보고 사신다는 말인가.


"엄마 요즘 뉴스 안 보세요? 온 세상이 난리인데, 엄마는 너무 평온한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가 보는 뉴스에서는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하더라고."

아뿔싸.


케이블 채널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엄마 아빠가 보는 TV 채널은, KBS, MBC, 그리고 아주 가끔 SBS. 포항에서 신문 광고 일을 하시는 외삼촌이 가져다주시는 신문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엄마는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극도로 편향된 일부의 정보만 접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뿔싸.


우리 엄마는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공식이 성립했던 경상도의 한 중간에서, '그 사람은 좋은 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다. 엄마가 읽었던 수많은 책 속에서 그분은 유대한 업적을 남긴, 우리나라를 이끌어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분이셨기 때문이다. 나는 명절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 우리 엄마에게 훈계를 펼치던 큰아버지와 삼촌들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럼에도 의견을 굽히지 않던 엄마가 멋져 보였던 나였기에,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바다가 한 눈에 펼쳐지는, 넓디넓은 공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 사방공원.


포항에는 사방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엄마와 드라이브를 간 그곳에는, 박정희 시대에 성공적으로 진행된 인근 지역의 사방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라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돈을 들이나, 차라리 어려운 사람 돕는 곳에 쓰지.' 하며 입술을 삐죽였지만, 엄마는 나쁜 사람이라도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한 것은 맞으니 무조건 미워할 수만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그의 딸, 박근혜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셨다.


"불쌍한 사람이지, 총격에 어머니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평범치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결혼도 못하고, 대한민국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니까."


그렇다. 우리 엄마는 박근혜 대통령이 쓴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도 감명 깊게 읽으셨던 분이다.


"그런 아픔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되겠다는데,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찌 그 용기에 힘을 보태주지 않을 수 있겠어. 대단한 결심이었잖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왜 한국의 수많은 어른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듯했다. 엄마는 마음속에 빚을 진 기분이라고 하셨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 어릴 적부터 정치를 보고 배웠으니, 누구보다 나라를 잘 다스릴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박근혜를 믿으셨다는 우리 엄마. 이런 우리 엄마의 기억 속에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여 싸우던 민주 혁명사 따위는 없는 듯했다. 할머니의 작은 가게에서 하루 종일 허리도 못 펴고 일을 하던 우리 엄마의 젊은 시절에, TV에도, 신문에도 나오지 않던 대학생들의 저항 운동이 포항의 작은 동네까지 전해질 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찾은 내 고향 포항에서의 첫 아침은, 길거리에 울려 퍼지던 태극기 사단의 스피커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차에 확성기를 달고, '태극기여, 일어나라'는 식의 전투적인 음성이 동네를 가득 울렸다.


"세상에나."


엄마가 전화로 들려주던 박근혜의 극성팬들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뉴스에서는 태극기 부대가 돈을 받고 길거리로 나간다고 했지만, 엄마의 주변분들은 그 이야기에 '내 돈 내고 나라 살리려 하는 일'이라며 버럭 화를 내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광화문 광장의 빨갱이들이야 말로 돈을 받고 그 난리를 펴고 있다며 언성을 높이셨단다.


'아닌데, 서울에 있는 내 며느리랑 손녀도 거기에 나갔다 왔는데... 그 애들은 돈 안 받았는데...'


엄마는 마음속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극성스러운 아줌마들의 후폭풍이 두려워 아무 말도 않고 '그렇구나'라며 억지 장단을 맞춰주셨단다. 그럼에도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날아드는 카톡 메시지는 차마 참고 있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자극적인 이야기로 정치인들을 헐뜯는 이야기에 엄마는 눈살이 찌푸려진다며, 주변의 아주머니들이 이런 가십에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갈 때면 자리를 뜨고 싶어 진다고 하셨다.


나는 카카오톡으로 전해지는 선정적인 가짜 뉴스에 노출된 엄마를 위해, 엄마가 들려주는 일명 '찌라시'의 내용에 반하는 JTBC나 한겨레 등의 뉴스를 보내드렸다. 어떻게 가짜 뉴스들이 생성이 되고 퍼지는지, 혹은 그 뉴스 속의 이야기가 왜 거짓인지를 밝혀내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내가 보내드리는 정보 또한 홍수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은지야, 엄마는 이제 무슨 말이 진실인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못 믿겠어."

너무나 상반된 두 방향의 정보를 받아들이던 엄마는 결국 더욱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노무현은 '쌍커플 수술한 대통령'으로만 알던 엄마가 읽는 책.


요즘 엄마의 식탁 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들이 올려져 있다. 지난 4년 동안 누군가의 힘에 의해 조종된 정보만 받아들이던 엄마가, 지식의 편식을 이겨내고자 혼자 힘겨운 싸움을 하고 계신 것이다. 어머니 곁에 머무르는 강성 태극기 부대의 눈에 띄지 않게, 책장 저 깊숙이 숨어 있는 이 책들은 엄마에게 한숨과 후회, 그리고 경이로운 이야기를 전해줬다고 한다.


나는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에서 보는 수많은 어르신들의 행동 또한 잘못됐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저 편향된 정보 속에서 굳어져 버린 그분들의 비뚤어진 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쩌면 나 또한 그분들과는 다른 방향의 편향된 진실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엄마만큼은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엄마의 생각을 스스로 찾아나가실 수 있기를 바란다. 설령 그 방향이 내가 생각하는 쪽과 다르다 할지라도, 나는 우리 엄마의 자유로운 사고를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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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소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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