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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Mar 29. 2017

꽃을 든 남편

조심스레 들고 와 전하는 그 마음

나는 항상 내 남편을 '진정한 경상도 남자'라 소개한다. 외국인이니 뭔가 다른 매력에 끌려서 결혼했으리라는 주변 사람들의 짐작과는 달리, 어릴 적 같이 자란 경상도 작은 동네 남자아이들처럼, 무뚝뚝하고 수줍음도 많아 그런 모습에 익숙함을 느껴 지금까지 곁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 년에 몇 번씩이나 한국을 오가면서도 제대로 고백조차 못 했던 남자이니, 어릴 적 동네 어귀를 맴돌며 좋아하는 여자 친구 곁에도 못 가던 내 동무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인지 이 남자와의 연애는 언제나 서툴고 어색했다. 그가 10시간을 날아 한국으로 오며 내게 준 첫 선물은, 초콜릿. 그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든 달걀 모양 초콜릿이었다. 하얀 봉지에 들어있던 그 달걀 초콜릿 하나를 받아 들고 나는 멍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초콜릿 하나를 독일서부터 이 흐물흐물한 봉지에 담아, 이리도 정성껏 들고 오다니.'

안에 무슨 장난감이 들었는지 궁금하니 빨리 열어보라던 이 남자를 보며, 나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로는 연거푸 마스카라를 선물로 받았다. 나는 화장품에 큰 관심도 없고, 마스카라는 말라 없어지지 않는 이상 하나로 몇 년을 쓰는데, 이 친구가 끊임없이 사 오는 마스카라를 잠자코 받던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마크, 이미 네가 사다준 마스카라 많은데... 왜 자꾸 마스카라를 사다 주는 거야?"


"그냥."


그가 덧붙인 말은, 여자한테 선물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 뭘 사줄까 고민하다가, 화장품이 좋을 것 같은데 다른 것들은 너무 복잡하고 뭐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 가장 안전하고 크기도 작은 마스카라를 사 왔다는 것이었다. 그가 고민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더 이상의 마스카라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함께 살고 난 후부터는 모든 선물이 생활 밀착형으로 바뀌었다. 슈퍼에 다녀오며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다 준다거나, 내가 공부할 때 필요한 필기도구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것에서 '이 남자, 꽤나 섬세한데?'하며 놀라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소한 선물이더라도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이런 내 남편이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가져다주는 선물이 하나 있다. 바로 꽃이다. 내가 한국에서 독일로 날아올 때마다, 이 친구는 꽃다발 하나를 손에 들고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이 부끄러움 많은 친구가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들고 홀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날 기다렸다는 사실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는 매번 꽃다발을 들고 나를 맞아 주었다.




가끔 놀러 오던 독일과, 모든 짐을 다 정리해 싸들고 온 독일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만 그리워하겠다고 모든 걸 포기하고 왔는데,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리워지는 아이러니를 맛보고는 한 없이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뜬금없이 마크가 퇴근길에 꽃다발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무 기념일도 아닌 그런 날,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나는 한없이 기뻤다.


"우와, 이거 나 독일 온 지 한 달 된 기념으로 사 온 거야?"


생각해보니 독일 도착하고 딱 한 달이 되던 날이라, 나는 별생각 없이 그 꽃다발에 의미를 붙여 마크에게 물었다.


"아 그렇네, 그럼 매달 마지막 날 이렇게 꽃을 사 올게."


그렇게 우리의 꽃다발 행사는 그 이후로도 몇 달을 이어갔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겨 우리의 작은 약속은 서서히 잊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아무 날도 아닌 어떤 날, 마크가 꽃다발을 들고 왔다. 그러자 나는 불현듯 우리의 잊혀진 약속이 떠올랐다.


"우와, 이거 매월 기념일(Monthly Anniversary) 꽃이야?"

"아, 맞다. 그 기념일 안 챙긴 지 좀 됐네."


마크는 그제야 우리의 약속을 떠올렸다.


"기념일 꽃은 아니고, '힘내라' 꽃이야."


바쁜 회사일에 쫓기며 힘들어하던 나를 위한 꽃이라고 했다.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이렇게 옆에서 응원이라도 하고 싶었단다. 투덜대는 아내가 귀찮았을 법도 한데, 아무 말 않고 들어주던 남편에게 내내 고마웠던 나는, 내게 꽃다발을 내미는 남편이 백마 탄 왕자님처럼 멋져 보였다.




생각해보니 이 친구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꽃다발은 사치스러운 선물이라 생각했었다. 며칠 만에 시들어버릴 아름다움에 돈을 쓴다는 것이 아깝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꽃가게에 가서 누군가를 위해 꽃을 고르고, 그 꽃다발을 두 손으로 고이 가져오는 그 마음을 읽는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은 감동으로 바뀌어 전해진다.


나는 이제 이 친구가 가져오는 꽃다발의 의미를 잘 안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툰 내 남편이 편지를 꾹꾹 눌러쓰듯 마음을 꼭꼭 담아 가져오는 그 꽃다발 안에는, '미안해', '고마워', '힘내'라는 말이 살짝 숨겨져 있다. 그래서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그에게 오늘도 묻는다.


"오늘은 무슨 꽃다발이야?"





A Husband with Flowers


There is a stereotype of european guys in Asia that they are mostly romantic to their girlfriends. So, when I say 'I have a german husband.', people imagine a romantic guy with sweet words. However, my husband is a bit different from their imagination. He was a super shy guy like my old friends from my hometown.


The first thing he brought as a present for me was a 'Kinder Chocolate' which has a small toy in it. It was a complete 'surprise', as was the name of the chocolate in Germany. I felt like I became a baby again.


Aftet that, he started to bring mascara. It wasn't just a one time, he kept bringing mascara whenever he visit me in Korea. One day, I got curious and ask him that,


"Hey baby, why are you keep buying mascara for me? I have more than enought mascara cause you brought it several times in a row."


Then he said, he wanted to buy me something that I can use, so he found out cosmetic could be a good option. However, he didn't have knowlege on any cosmetic product except 'mascara', something you can use for your eyelashes.


Since we've got married, we started to find a present from our real-life related stuff. He bought me cookies, shampoo or tooth paste as daily presents and I finally got satisfied :)


It's not only presents my husband brings to me. He also brings me 'surprise' flowers from time to time. When he first brought me flowers, I asked him


"Is it a special day today?"


and then I tried to find the reason why he brought the flowers.


"Aha, is it my monthly anniversary to celebrate the day I came to Germany?"


Since then he has started to bring flowers at every end of a month. However, because of busy routine everyday, the promise was forgotten by busy days.


A while later, he brought flowers again. I have totally forgotten that we have such a promise, but the flowers reminded me of that.


So I asked,

"Is it the monthly anniversary flowers?"


And he answered,

"Ah, we had that anniversary. But it's not the flowers for that. It's 'cheer up' flowers."


He added that he brought the flowers to make me happy because I was groomy for a while from work.


Now I know that bringing flowers is a way to show his careness and every bouqet of flower has a meaning. Since I now know his expressions, whenever he brings flowers, I ask him "What kind of flowers i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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