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어느 날 위스키가 담긴 잔 앞에서 선물을 받은 책의 제목이다.
그리고 첫 페이지에 있는 문장들은 기어코 나의 뇌리에 박혔다.
그러나 나는 기어이 써버리는 사람
논리도 없이
비약만 있는 미래를 꿈꾸고
망해버린 꿈들을 죄다 옮겨 적는 사람
이걸 토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죠?
. . .이걸 토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죠?
다들 각자의 해소법이 있겠지만 나는 몰랐다.
그리고 내가 해소를 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확실히 알게 됐다.
저 문장을 읽고는 깨달았다.
좋은 글을 쓰지도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라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냥 단지 '누군가는 공감해 주려나.'라는 흔한 마음을 담아서
나의 편안한 밤을 위해서 토해낸다.
결국 나는 이 행위를 위해 적당한 소재를 찾아냈다.
나에게 아주 딱 맞고 적당한 소재를 말이다.
내가 기어코 손에 쥐는 - 위스키 잔을 말이다.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때로는 '해소'가 되기도 하지만 어떨 땐 오히려 먹먹해질 때가 있다.
술자리가 불편할 때.
내가 싫어하는 내가 되었을 때.
뱉어낸 말들이 후회가 될 때.
가끔 내가 광대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정적을 참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그 어떤 게 나를 그렇게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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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은 사람에 의해 수많은 감정들을 찾는다. 관계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관계에 의해 삶이 싫어질 때도 있다.
유연하지 못한 나는 후회스러운 날들도 많다.
잠 못 이루는 날들도 많다.
결국 나는 이렇게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젠가 글을 쓰다가 마치 배설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토해낸다는 표현을 떠올리곤 마땅하다는 생각을 혼자 간직했다.
작가에게 감사했다.
혼자만의 심취가 아님에 감사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는 나는 오늘 밤도 하얀 바탕에 글자들을 던져본다.
나는 위 책의 작가처럼 훌륭한 표현은 못한다.
그럼에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 본다.
다음날엔 분명 내가 던져놓은 글자들을 부끄러워할 테다.
다만 그 맛있었던 혹시 꽤나 괜찮았던 그 위스키가 담긴 잔에 대해 끄적였던 그것들은 나름 괜찮다.
나름 나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나름.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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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셨던 그 올드보틀 말이야.
어떤가. 이 짧은 문장이.
위스키는 나에게 나를 더 괜찮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