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단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기까지 하는 내가 우습다.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위스키애호가들에게는 또 다른 슬픔을 안겨준 코로나. 타격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크겠냐고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위스키는 알다시피 흔히'양주'라 불리듯 서양에서 왔고(위스키 애호가로서양주라 불리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만), 그나마 위스키 문화가 활발한 곳으로 일본이 가까운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더 멀어진 듯하다. 무엇보다 원활치 못한 교류로 원래도 고급 취미인 위스키가 가격이 점점 올라가는 추세이다. 그중 어떤 것들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맛을 보는 것조차도 딴 세상 이야기가 됐다. 정말 맛 좋은 위스키를 먹으려면 그 옛날 금주법 시대처럼 산으로 들어가 직접 술을 숙성시켜야 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 면세점 구매는 놓치기 힘든 유혹이다.특히 최근 국내에 위스키 문화가 눈에 띄게 활발해짐에 따라 관련 브랜드들도 국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주 면세점도 마찬가지로 여러 SNS 등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 가끔풀리는 한정판 위스키를 사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 오픈런을 하고는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도 위스키를 사기 위해 해외를 갔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우리는 위스키를 즐기기 전에도나름 여행보다는 휴양을 즐기기 위해 종종 비행기에올랐는데 공항에 갈 때마다 면세점에 바글바글한 인파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 흥미가 없었다. 들러봐야 지인들의담배 심부름정도였다. 무엇보다 면세를 받아봐야 뭘 사야 할지도 몰랐고, 피치 못하게 공항에 일찍 도착했어도 면세점 구경은 손에 꼽을 만한 것이 히스 씨의 풍부한 식욕으로 맛집을 찾기가 힘든 공항에서도 고르고 골라 여행 마지막 날까지 꾸역꾸역 배를 불렸던 것이다.
그렇게쭉 같을 것만 같았던 우리의 일정은 어느샌가부터 약간의 변화를 겪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때처럼 히스 씨의 빛나는 추진력으로 여행 출발 며칠 전 몇몇 사용해야 할 물건들만 빼고 짐 싸기를 끝내고는 핸드폰화면을 넘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히스 씨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액정을 손가락으로 톡톡 거리며 내게 보여준 것은 얼마 전 조니워커에서 출시된 블랙라벨 오리진 시리즈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위스키 입문은 확실히 조니워커였다.
게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아일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에 상당한 흥미를 갖고 있던 차에 블랙라벨 오리진 시리즈에 아일라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침 우리의 여행시기와 맞물려 출시되다니. 이건 사라는 게 아니면 뭐겠는가.
여행지는 후쿠오카였다. 호텔과 가까운 역에 도착을 해보니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항상 외출도 주말은 피하고, 시골이란 느낌이 들 정도의 여행지만을 고르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다시피 경보로 호텔에 도착했다. 단정한 직원분은 친절하시게도 우리에게 호텔에 대한 안내를 하나하나 다 해주셨다. 기나긴 체크인을 마친 뒤 짐을 거의 던져놓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 와중에 신호등은 왜 이렇게 느리고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왜 그렇게 느긋해 보이던지. 사실 그렇게 바삐 움직이지 않았어도 되었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이끝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무사히 축제에 합류한 우리는 위스키 부스를 보자마자 달려가 나는라프로익 15년을 고르고, 히스 씨는글렌모린지 시그넷을 골랐다. 그렇게 한 잔씩 들고는 공연장 앞 테이블로 가 축제 분위기에 즐겁게 마시긴 했지만, 일회용 음료 잔에따른 위스키는 향도 거의 날아간 상태였고,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그저 축제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이유가 된 것이다. 다만 뒤 쪽 부스에서 산타 모자를 쓴 예쁜 점원이 만든 애플 슈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 마켓이 열릴 때 후쿠오카를 3번 정도 더 갔지만 축제는 1년에 한 번 정도면 되었다.
사실 도시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화려한 대도시 후쿠오카를 가기로했던 건순전히 그곳의 바(bar)를 가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한 동안 그곳에 빠져 한 달에 3번 정도 비행기표를 끊었고, 여행의 매일 밤을 이곳에서 보냈다. 만약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그곳에 가있을지도 모를 일이다.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몰트 바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지만여전히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위스키 매니아들 사이에선 익히 유명해진 그곳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계획했던 대로 공항에 들러 조니워커 블랙라벨 오리진을 구매했다. 원래는 아일라를 구매할 참이었는데, 스페이사이드가 인기가 많다는 소식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스페이사이드를 샀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역시 아일라를 샀어야 했다는 결론을 냈는데, 어차피 후쿠오카를 또 갈 참이었으니 그 사이에 소진되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비행기에 올랐을 땐 생각보다 물량이 꽤 남아 았어 김이 빠지긴 했지만, 결국 아일라 오리진도 데려왔다.
실제 모습과 그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조니워커 블랙라벨 오리진 시리즈는 디아지오에서 스코틀랜드의 네 곳의 위스키 생산지를 테마로 블랙라벨을 출시한 것으로 3개는 블렌디드몰트, 1개는 블랜디드이며, 모두 12년 숙성으로 도수는 같다.
스페이사이드의 경우 나중에 국내에 풀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구매한 1L가 아닌 700ml로 들어왔고 가격은 후쿠오카 면세점에서 1L 한 병에 4500엔,한국에서는 700ml가 5만 원대였으니확실히 면세점 찬스가 빛을 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