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즐기면서 하는 고민 중 하나가 페어링이 아닐까. 특히나 위스키라는 주종은 주로 향에 집중을 하다 보니 페어링에 대한 고민이 길어질 수 있다.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좋은 술, 맛있는 술'에는 페어링이 오히려 방해가되는 건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위스키에 가장 좋은 안주는 '물'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굳이 찾는다면그저 구미가 당기는 대로 밥상을 차리는 것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어찌 됐든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어떤 게 맞는지' 눈치싸움 따위는 하지 말자는 거다.
물론, 위스키의 향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고 하면 온전히 위스키만을 즐기거나 여기에 무언가를 굳이 더한다 해도 '브리딩' 아니면 '물'이다. 이는 위스키의 향을 느끼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같은 대답이 되어버리지만 그렇다고 굳이 먹고 싶은 걸 참을 필요가 있나.세상에 마음이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은데 이것마저도 제한을 둬야 하다니. 조금 슬퍼진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일시적 저혈당으로 공복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런 배고픔을 떠안으면서까지 위스키의 향을 느끼겠다고 꼬르륵거리는 배에 힘을 주며유리잔에 코를 박는 꼴이라니. 아이러니하다.사실 이건 내 경험인데 그 이후로는 안주가 없는 바(bar)에 가기 전에는 배를 두둑이 채우고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얼마 전에 갔던 일본의 어느 동네의 작은 바의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야마자키 하이볼을 주문했더니 왜 좋은 술을 하이볼로 마시냐며 한 소리 하더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하이볼의 나라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 이런 소릴 듣다니.
그렇다고 해서 그곳이 별로였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고집스럽지만 시원시원하게 답해주시는마스터는 칵테일마저 터프하고 심플하게 만들어주셨고, 기본에 충실한 맛은 내 취향이었다.나중에는 현지 맛집들도 많이 알려주시고 기분이 좀 좋아지셨는지이런저런 경험담이나 유익한 정보들도 알려주셨다. 아, 그리고 귀여운 손자 자랑도 하셨지...
뭐- 우리도 위스키 좀 마실 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으로 어깨 좀 으쓱거렸을 때에는 값 좀 하는 위스키는 무조건 니트로 마셔야 한다는 촌스러운 허세에 사로잡혀있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하이볼러버이다.
맛있고 좋은 술로 하이볼을 만들면 그만큼 더 맛있고, 술을 풀어내는 방법에 따라서 향도 다르니 이것도 재미고 즐기는 방법이다. 이 위스키로 하이볼을 만들면 어떤 향이 날까- 하는 등의상상을 할 때면 즐거워진다.
아무튼 하이볼을 만드는 것에도 이렇게 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에 고기냄새라도 더해봐라. 아마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위스키와 소고기의 페어링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 걸. 이를 이해하지 못 하는 누군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스키를 사랑하는 이로써 너무나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에 이런 하찮은 글을 쓰기까지도 고민이 많았다.
해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고기를 굽기 전에 위스키 한 잔 정도는 온전히 그것의 향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도수 높은 풍부한 향의 위스키와 윤기가 흐르는 부드러운 소고기를 상상해 보라. 정말 위스키만 마시겠는가.
고기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초콜릿도 좋고, 치즈나 크래커도 잘 어울린다.
언젠가 좋은 날 둘도 없는 오래된인연들과 위스키보틀을 주문하고 맛 좋은 안주들을 배불리 먹은 적이 있다. 쉼 없이 채워지는 잔에 계속해서 날라 오는 보기 좋은 음식들에 더없이 행복했고 정신없이 즐거웠다. 그날의 위스키 또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