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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record Mar 18. 2022

맞아요. 거기요. 바 키친(Bar Kitchen)

후쿠오카에는 위스키 러버들의 성지가 있다.

위스키를 즐기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일본이란 나라가 등장하게 되고 그다음은 꼭 한번 묻게 된다. "후쿠오카 바 키친 가보셨어요?"


"맞아요. 거기. 바 키친(Bar kitchen)".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게 되는 타지의 위스키 바.

후쿠오카에 간다기보다 바 키친을 간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곳. 어쩌면 일본인들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방문하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코로나19로 과거형이 되어버렸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현재형이 되지 않을까.




후쿠오카 역에서 버스로 15분 남짓의 텐진역에 위치해 있는 바 키친(Bar kitchen). 물론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당시 100엔 버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버스를 자주 애용했다.


화려한 온사인과 젊은이들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텐진의 거리에는 온갖 맛집들의 유혹이 있기에 이를 뿌리치지 못하겠다면 일찌감치 도착해 배를 채우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저녁 시간대에는 밥집보다는 이자카야가 주를 이루기도 하고 웬만한 곳은 항상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 첫날 텐진에서의 저녁식사나 이자카야는 이미 포기했다. 그러니까 텐진을 가는 목적은 오로지 바 키친(Bar kitchen)이었다.

얼큰하게 달아오른 얼굴들과 겁 없는 발걸음들에 조금은 주눅이 들기도, 반대로 덩달아 온 몸이 달궈지는 듯한 텐진의 밤거리. 하지만 네비를 켜고 이 거리를 지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골목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눈에 익은 듯한 그곳의 간판이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겨준다. 단정한 모습의 입구 옆 세워져 있는 자전거는 가게의 일부분이 분명한 듯하다.


바깥문의 크지 않은 투명한 유리 넘어로는 작은 벽돌들만이 보이는데 과거 호그와트 입학을 꿈꿨던 나는 잠깐 동안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4분의 3승강장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입구 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텐진의 뜨거웠던 열기가 단번에 식혀지는 듯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손님들이 두고 간 우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 쪽의 꾸밈없이 정갈한 느낌의 나무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는 순간 위스키로 빼곡하게 채워진 벽장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작은 체구지만 왠지 모를 무게감몸에 밴듯한 정중함이 느껴지는 인상 좋으신 사장님이 말을 건네신다.


"위스키 밖에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몰트를 찾아온 우리들에게는 꽤나 반가운 질문이었던 사장님의 첫마디.


요리도 칵테일도 없는 오로지 위스키만이 준비되어 있는 곳.

우리는 드디어 위스키 러버들의 성지순례에 동참한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건물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색하게도 어느 한적한 마을의 커다랗고 단단한 오두막에 들어온 듯하다.


진갈색의 가구들은 숲의 나무들을 그대로 가져와 자른 듯한 모습으로 특히나 기다란 테이블은 나무길이를 짐작해볼 정도로 사장님만이 오갈 수 있는 공간만을 남겨두고 내부 길이를 채우고 있다. 우린 이 멋진 테이블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색함도 잠시 사장님이 어떤 게 좋으시냐고 물어보신다.

눈치챘겠지만 이곳에는 메뉴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부분의 바(bar) 처음 방문하거나 주문을 고민하는 손님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메뉴판이 있기 마련이지만 훌륭한 바텐더(bartender) 몰트(malt) 수십 가지가 있는 데 굳이 메뉴판이 의미가 있을까. 가끔은 그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곳에선 그저 당신의 취향을 주문하면 된다.

너무나 멋진 일이 아닌가.


바텐더는 당신의 취향을 말하면 그에 맞춰 어느 때보다 맛있는 위스키를 내어줄 것이다.

그리고 주문이 쌓일수록 당신이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당사자보다 더 잘 집어낼지도 모른다. 바로 우리가 원하는 바텐더이자 바이다.


물론 훌륭한 바텐더는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굳이 이곳에 온 이유가 있다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술들과 너무나 혜자로운 가격이다. 국내에서는 아니 어디에서든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귀한 술들을 좋은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국내에서 만난 하더라도 주세가 무거운 한국에서 이 만한 술들을 맛보려면 감당하기 힘든 지출이 필요하지만 이곳에서는 당시 왕복 비행기 값을 합한다 해도 그보다 더 저렴한 값에 귀한 술들을 맛볼 수 있었다. 만약 위스키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또 이 곳을 알고 있다면 그 와중에 조건이 된다면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가히 위스키 러버들의 성지라 불릴만하다. 




주문과 동시에 왠지 빈티지함과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유리잔에 담긴  얇게 썰은 스모크 치즈가 나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위스키와 함께 맛 본 스모크 치즈를 잊지 못하고 한 동안 집에서도 위스키와 스모크 치즈를 즐겼고 지금도 종종 꺼내어 본다. 치즈의 경우 자주 먹지 않으면 보관이 힘들기 때문에 항상 준비해두진 못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의 그 맛과 같을 리가.


두 번째 방문부터는 사장님께서 거의 완벽히 우리 둘의 취향을 파악하신 듯했다. 히스 씨와 나는 취향이 완전히 다른 데 그중 하나를 들자면 쉐리를 선호하는 히스 씨와 달리 나는 쉐리보다는 피티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부분들을 파악하시고 같은 증류소의 위스키여도 캐릭터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들을 각각 추천해주셨고 우리는 모든 잔들이 만족스러웠다.


그중에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이 이 아델피이다. 사장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제품이라며 내어주신 귀한 한 잔. 언제 또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흔쾌히 따라 주셨는데 정말 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아델피란 이름으로 나오는 많은 술들이 있지만 그때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그때의 그 맛에 버금가는 맛은 어느 것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덕분에 여행 내내 하루의 마무리가 귀한 위스키들로 채워져서 행복한 밤이었고, 깊은 잠에 들 수 있어 다음날은 개운했다. 

낮에는 여기저기 관광지들과 맛집들을 찾아다녔고 밤이 되면 편안한 복장으로 어김없이 찾던 그곳을 우리는 위스키 얘기를 할 때마다 한 번씩 꼭 꺼내게 되었다.


만약 코로나가 아니라면 그때처럼 자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 있더라면 우린 아마 지금도 그곳에 앉아 위스키 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달리레코드 dali.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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