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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record Apr 29. 2023

금방 취하거나 가리거나

술은 기호식품이다.

위스키를 좋아하게 된 지 꽤 오래되기도 했고, SNS에 업로드를 종종 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내가 술을 굉장히 잘 마신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위스키가 도수가 높다보니 그런 오해를 하기 쉽나보다.


하나 예를 들자면 아침 인사를 '어제도 술 마셨어?'(참고로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오늘도 술 마셔?'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랄까.


실은 나는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못하고 많이 마시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심지어 피하는 주종도 많고, 무엇보다 매일 마시지도 않고 정말 잘 마시는 사람들을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언젠가 쓴 적이 있겠지만 포도(과실주)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와인이나 꼬냑은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고 마신다고 해도 '컨디션이 좋은 날 누군가가 권해준다면'이다.


위스키를 어느 정도 즐겨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취향을 공감할 거라 믿지만 오히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오해들을 자주 하는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나는 위스키를 즐겨마시고 그중에서도 싱글몰트나 CS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블렌디드도 좋아하고, 바에 가면 주로 위스키 하이볼을 주문하며 그중에서는 라프로익 하이볼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니트로 마신다면 10년은 선호하지 않지만 25년이라면 행복할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까 한 때는 아드벡 19를 너무 좋아해서 일부로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아, 생각해 보니까 사실 독병을 가장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고... 이런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보면 아마도 그 사람이 나의 인간관계에서 사라지는 것도 없는 얘기는 아니지 않을까.


술자리를 얘기해보자면 그 자리를 오래 지키는 방법은 컨디션 조절을 잘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조금 마시기보다는 내가 잘 넘길 수 있고 비교적 내 몸에서 받아내기가 쉬운 주종들을 알고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현실적인 것은 무엇보다 술을 적게 마시는 것이겠지만 남들이 잔을 기울일 때 혼자서 술잔을 비우지 않는 것이 싫다면 나름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마시고 즐기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이가들다보니 숙취해소제 정도는 야무지게 챙겨먹는 편이다.


술을 즐기면서 여러 사람과 만나 얘기를 하다 보니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와인이나 꼬냑을 피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얼마 전 만난 바텐더 분도 와인이나 꼬냑을 잘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더해서 사케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입 맛에 맞는 건 꽤 잘 넘기는 편이다. 이렇게 말하면 소위 있는 척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건 술을 다양하게 마신 경험의 대가이고 이게 최선의 이유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나도 왜 그런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곤 하는데 아마도 술을 만드는 재료나 과정들에 따라서 내 몸이 가리는 게 아닐까 싶다. (참고로 포도자체는 씹지도 않고 넘겨버릴 정도로 좋아라한다.)


위스키의 경우에도 몰트 위스키는 꽤 잘 마시는 편이지만 그레인위스키나 블렌디드는 조금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나 숙성년수가 굉장히 짧다면 애초에 피하는데 이거야 위스키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얘기니 그만하겠다.


아무튼 와인과 꼬냑은 일단 포도로 만든 것인데, 아예 포도와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아무리 좋고 맛있는 와인이나 꼬냑이라 해도 속에서 안 받기 때문이다. 


종종 칵테일을 만들 때 꼬냑이 들어갈 수 있는데 웬만하면 바텐더  분이 하시는 대로 두는 편이지만 컨디션이 별로거나 몇 잔 더 마시고 싶을 때는 기주를 바꿔달라고 하거나 다른 메뉴를 주문한다.


소주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컨디션이 별로일 때에는 휘발유 향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나마 청하가 좀 괜찮은 정도랄까. 아, 맥주는 라거를 좋아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전통주인데 이것도 입 맛에 맞는 건 꼴딱꼴딱 거리며 곧잘 넘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몇 년 전 배상면주가에 직접 방문해서 사온 생 민들레주 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버지 생신에 맞춰 사 가서 결국 내가 거의 반을 비운 거 같다. 그 뒤로 꽤 도전해보았지만 결론은 생주 중에서 좋아하는 걸 고르는 것으로 좁혔다. 다만 생주를 구하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본인이 잘 넘기고 좋아하는 주종과 넘기기 거북스럽고 금방 취하게 되는 주종들을 나눠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다. 술을 다양하게 즐길수록 본인의 취향이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술을 오래 마셔야 할 거 같은 모임에서는 웬만하면 섞어 마시는 것도 피하는 편이다.


첫 잔이 맥주라면 계속해서 맥주만 마시려고 하는 편이고,

하이볼이라면 그냥 끝까지 하이볼을 마시고, 들어가는 주종도 따진다.


어떤 술집에서는 보드카로 만들기도 하고, 내가 선호하지 않는 위스키가 들어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술로 만드는지 기주가 적혀있는 메뉴판도 있지만 그냥 하이볼이라고 적혀있는 곳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그냥 맥주를 주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더라. 

개인적으로 집에서든 바에서든 술집이든 하이볼이란 메뉴를 꽤나 즐기는 편인데 만드는 방법 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하이볼이 맛있는 가게를 찾는 것에 작은 쾌감마저 든다.


술이 어떻게 풀리는 지 니트와 하이볼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다. 물론, 집에서 취향에 따라 간단하게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자 매력이겠지만 생각보다 술을 풀어내는것에는 다양한 기술들이 있다.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다면 바에 가서 전문가에서 하이볼을 주문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물론, 기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메뉴이긴 하지만 베이스가 좋을 수록 더 맛있는 만큼 기술이 좋을 수록 술도 잘 풀린다.


흔히 심플한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않는가.


뭐 나만해도 한 때는 입에 지 않거나 저렴한 술로 만드는 것 정도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반박하진 않겠지만, 지금에와서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 만큼 국내에서도 위스키 문화가 크게 발전했고 블렌디드부터 싱글몰트나 CS까지 다양한 종류가 들어오고 있다.


누군가에겐 읽기 불편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위스키애호가인 누군가가 술을 풀어내는 기술에 감탄하게 되는 날을 만난다면 드디어 하이볼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슬며시 권해보고 싶다.


그나저나 꽤 예전부터 이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너무 짧게 끝날까봐 망설였는데 너무 길어져서 당황스럽네; 아 라프로익25년을 저렇게 마실 날이 올까.


@달리레코드 dali.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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