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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Jul 11. 2022

마음이 힘들 땐, 요리를 한다.

알알이 붉게 익은 사랑이 배달 되었다. 지인 분이 정성스레 농사지으신 토마토를 친한 언니가 주문해준 것이다. 마침 신랑의 생일이라, 야채스프와 샐러드, 농어스테이크에 곁들일 소스에까지 모두 토마토를 넣었다. 파슬리와 딜, 바질 등 허브도 가득 넣었다. 신랑은 그리스에서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여러 일들로 많이 지쳐있던 신랑에게 요리로 힘을 북돋아줄 수 있어 기뻤다. 

나는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힘들 때면 요리를 한다. 자연에서 온 재료들을 눈으로 코로 손의 감각들로 만나고, 그를 다듬고, 썰고, 굽고, 차려내고 하다보면, 흩어진 마음들이 다시 모이고, 힘이 난다.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의 감각들에 집중하여, 주어진 재료 안에서 가장 조화롭고 아름답고 맛있는 것을 만들고 나누는 것엔 큰 기쁨이 있다.


그런 요리는 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사랑의 행동이자, 명상이자, 기도이기도 하다.


*

요리를 하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있는지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 앞에 있는 재료 하나하나에 깃들어있는 생명들과 그 생명을 키워낸 생명들에 감사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은 또 사랑이기도 하다.


*

최근, 무기력함이라는 감정의 뿌리를 따라가다보니 온 몸과 마음이 얼어붙었던 과거의 아픈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더이상 과거에 갇혀있지않고, 주체적으로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지혜가 있다.'

내가 원하는 데로,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재료를 선택하고, 다듬고, 조리를 하다보니, 내 안 깊은 곳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삶에서도 주어진 모든 것들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들이 펼쳐질 수 있음을 다시금 기억한다.


땅을 밟고선 두 발바닥에서부터 힘이 차오르고,

그런 요리를 먹고 또 나누다보면 사랑과 생명력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긴장으로 굳어있었던 몸의 부분도 풀리고, 얕아졌던 숨도 깊어지고 편안해진다.




두 아이를 재우고, 가만히 누워 내 몸과 하나된 음식들을 느껴본다.

내게 토마토를 선물해 준 마음, 토마토를 길러내고, 집 앞까지 전해준 손길들, 토마토 안의 햇살, 흙, 이슬, 달빛...수많은 존재들의 사랑과 위로가 이미 내 안에 가득하다.

빛을 따라 피어나는 꽃들처럼, 빛을 안고 익어가는 열매들처럼, 나도 그렇게 밝고 따스한 생명들로 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러함으로, 어둠과 상처를 이겨내고 벗어낸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또다른 사랑이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소중한 이들에게 언제든 힘이 되는 따스한 밥 한끼 차려낼 수 있기를...그렇게 서로의 살아있음을 축하하고, 축복하며, 사랑으로 채우고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밤이다.


장맛비가 멈춘 밤하늘이 맑고도,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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