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알이 붉게 익은 사랑이 배달 되었다. 지인 분이 정성스레 농사지으신 토마토를 친한 언니가 주문해준 것이다. 마침 신랑의 생일이라, 야채스프와 샐러드, 농어스테이크에 곁들일 소스에까지 모두 토마토를 넣었다. 파슬리와 딜, 바질 등 허브도 가득 넣었다. 신랑은 그리스에서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여러 일들로 많이 지쳐있던 신랑에게 요리로 힘을 북돋아줄 수 있어 기뻤다.
나는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힘들 때면 요리를 한다. 자연에서 온 재료들을 눈으로 코로 손의 감각들로 만나고, 그를 다듬고, 썰고, 굽고, 차려내고 하다보면, 흩어진 마음들이 다시 모이고, 힘이 난다.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의 감각들에 집중하여, 주어진 재료 안에서 가장 조화롭고 아름답고 맛있는 것을 만들고 나누는 것엔 큰 기쁨이 있다.
그런 요리는 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사랑의 행동이자, 명상이자,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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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하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있는지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 앞에 있는 재료 하나하나에 깃들어있는 생명들과 그 생명을 키워낸 생명들에 감사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은 또 사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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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무기력함이라는 감정의 뿌리를 따라가다보니 온 몸과 마음이 얼어붙었던 과거의 아픈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더이상 과거에 갇혀있지않고, 주체적으로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지혜가 있다.'
내가 원하는 데로,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재료를 선택하고, 다듬고, 조리를 하다보니, 내 안 깊은 곳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삶에서도 주어진 모든 것들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들이 펼쳐질 수 있음을 다시금 기억한다.
땅을 밟고선 두 발바닥에서부터 힘이 차오르고,
그런 요리를 먹고 또 나누다보면 사랑과 생명력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긴장으로 굳어있었던 몸의 부분도 풀리고, 얕아졌던 숨도 깊어지고 편안해진다.
두 아이를 재우고, 가만히 누워 내 몸과 하나된 음식들을 느껴본다.
내게 토마토를 선물해 준 마음, 토마토를 길러내고, 집 앞까지 전해준 손길들, 토마토 안의 햇살, 흙, 이슬, 달빛...수많은 존재들의 사랑과 위로가 이미 내 안에 가득하다.
빛을 따라 피어나는 꽃들처럼, 빛을 안고 익어가는 열매들처럼, 나도 그렇게 밝고 따스한 생명들로 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러함으로, 어둠과 상처를 이겨내고 벗어낸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또다른 사랑이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소중한 이들에게 언제든 힘이 되는 따스한 밥 한끼 차려낼 수 있기를...그렇게 서로의 살아있음을 축하하고, 축복하며, 사랑으로 채우고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밤이다.
장맛비가 멈춘 밤하늘이 맑고도,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