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치솟는 물가와 환율 등 경제 위기 속에서 여러 사건과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모든 면에서 불안정하고 불안한 시대이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며, 닻을 내리는 게 필요하다.
비가 내리는 오후, 문숙님의 레서피를 참고하여 야채스프를 끓였다. 야채들을 씻고, 다듬고, 썰고, 끓이는 모든 과정에 마음을 담아 어느 때보다 더 정성스레 요리를 하며, 몸이 아픈 친구와 마음을 다친 친구를 떠올렸다. 그렇게 자연스레 그려지는 얼굴들 앞에 이 따뜻한 사랑 한그릇 가득 퍼다주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마치 수채화처럼 번져나가,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안하길 바라는 기도가 되었다.
스프 한 그릇 안에, 온 세상이 담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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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재우고, 김기석 목사님의 <일상순례자>라는 책의 구절들을 만난다.
'일상을 정성스럽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덧정 없이 떠도는 우리 마음을 지키는 닻이다.'
'일상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멀리 떠나지 않고도 우리 삶을 의미와 변화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이다. 삶이 이루어져야할 마당은 적막한 산기슭이 아니라 온갖 소음으로 진동하는 일상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글이 너무나 반갑고, 일상순례자라는 단어가 참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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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적막한 산기슭'을 찾아다녔던 시절이 있다. 세상은 너무 혼란스러웠고, 그 흐름 또한 너무 거칠고 빨라서, 나는 휩쓸려살지 않고자 산기슭에서 살고자했다. 출가를 하거나 수도원 생활을 하며,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실로, 히말라야 자락의 명상센터 등에서 그렇게 고요하게 지낸 적도 들었고, 마더테레사하우스나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자유롭게 히말라야 일대를 다니던 시절
하지만 그 안에서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나 고통이나 갈등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나는 산기슭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 뒤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다시 현실을 살아가며, 나는 진짜 영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역할과 상황 안에서 깨여있고 선한 마음으로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소음이 진동하는 일상' 안에서 매일 균형과 중심을 잡으며, 그 안에서 성찰하고 더 사랑하고 감사하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삶은 저 너머의 이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내가 서있는 자리에 있음을 느끼며, 나는 매일의 일상을 끌어안아 매만지고 다듬는다. 그 안에서 울고 또 웃으며, 내 안의 따스한 사랑을 키워가다보면, 그 사랑은 자연스레 강물처럼 넘쳐 흐를 것이다. 그 강물이 목마른 이에겐 물이 되고, 배고픈 이에겐 밥이 되고, 아픈 이에겐 약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나의 일상이, 나의 삶이 그 자체로 수행이 되고, 기도가 되고, 사랑이 되는 일상순례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