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내린 비가 이어지는 아침이었다. 쨍쨍한 햇살 아래에서 축축해진 몸과 마음을 말리고 싶은 날이었다. 문득,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에 태풍이 불어오는 것처럼 심란한 날에는 밑반찬을 만든다. 재료들을 씻고, 다듬고, 조리고, 볶다 보면 산란하게 흩어졌던 마음들이 가지런히 모인다.
오늘은 우엉조림과 마늘종장아찌를 만들었다. 우엉은 끓는 물에 식초를 넣고 데치듯 삶아 쓰고 아린 맛을 빼고 나서 건져서 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간장, 올리고당, 설탕을 조금 넣고 졸이면 된다.
제철이라는 마늘종은 한 입 크기로 썰어서 유리 등으로 된 통에 넣어두고, '간장, 식초, 물, 설탕'을 '1:1:1:1' 비율로 끓인 물을 한 김 식혀 통에 부었다 며칠 익히면 장아찌가 된다.
밑반찬을 통에 담아두고는 좋아하는 글귀들을 찾아 읽는다.
일상을 정성스럽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덧정 없이 떠도는 우리 마음을 지키는 닻이다. ... 일상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멀리 떠나지 않고도 우리 삶을 의미와 변화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이다.
삶이 이루어져야 할 마당은 적막한 산기슭이 아니라 온갖 소음으로 진동하는 일상이다.
- <일상순례자>, 김기석
거울 같은 글에 나를 비춰보며, 뜨거운 물에 생강차를 타서 마시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을 살게 하는 감각들이 살아난다.
내게 있어 일상의 닻은 요리인 것 같다. 밑반찬은 나와 가족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