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어린이집에서 가을맞이 현장체험학습을 간다고 했다. 그러려나 했는데, 키즈노트 공지사항에 점심도시락과 간식을 챙겨 오라는 알림이 떴다.
이유식통으로 썼던 보온병에 집에 있는 반찬 몇 가지 담아주려고 했는데, 첫째가 그건 싫다며 소리를 높인다.
"○○는 토끼 모양 도시락 싸 온다 했다 말이야!!!"
현장체험학습 하루 전날밤이라 다시 장보기도 애매해서 냉장고 재료를 최대한 활용할 궁리를 해본다. 어디선가 봤던 각종 동물, 캐릭터 모양의 도시락들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봤던 도시락 @픽사베이
그렇게까지는 어렵겠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에다 동그랑땡을 곁들일까 했더니, 첫째도 그제야 만족한 얼굴이다.
'그래, 그 정도는 예쁘게 만들 수 있지.'
하고, 간식으로는 냉동실의 미니 크로와상 생지를 구워야겠다 마음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서인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일부러 다른 방에 둔 핸드폰 알람이 여러 번 울리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어딘가 굳고 삐걱거리는 몸을 깨우기 위해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
보이차를 한 컵 가득 우려내고, 뜨거운 연기가 한 김 가신 뒤 마시니 잠이 저만치 달아난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미니 크로와상 10개를 나란히넣는다.
부엌 가득 퍼지는 버터 냄새를 맡으며, 양파를 잘게 썰고, 계란을 풀어 계란옷을 만들고, 동그랑땡을 굽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마음이 급해져서인지, 계란옷은 반으로 찢어지고, 동그랑땡은 기름이 모자라 타버렸다. 분명 자기 전에는 계란으로 포근히 감싼 볶음밥 위에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줘야지 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케첩을 짜니 케첩마저 사방으로 퍼진다.
오 마이갓!
결국 내 계획과 전혀 다른 도시락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좋다고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는 아이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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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보내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로 '몆 년 동안 식구들 도시락을 몇 개씩 어떻게 쌌냐'고 여쭈었더니, 엄마는 오늘도 도시락을 싸서 아빠와 밖에 나왔다시며, 그게 그냥 일상이 되었다고 하셨다.
새삼 급식이 고맙기도 하고, 도시락 반찬을 나눠먹던 추억도 떠오른다. 무엇보다, 지난밤부터 고심하고 아침부터 애쓴 스스로를 토닥이며 이 글을 쓴다. 예쁜 도시락 싸기는 실패였지만, 그 안에 담고 싶었던 사랑은 찐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