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생일을 맞아 생일상을 차린다. 힘들게 너무 많은 것을 하지 말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들로만 준비했다. 생일날엔 미역국이 맛있어야 한다. 집 근처 생협 직원분께 배운 비법인데, 국거리용 소고기를 덩어리째 한 시간 끓여서 고기는 찢어 넣고 그 육수로 미역국을 끓이면 진짜 맛있다!(일반 미역국 끓일 때는 간장과 멸치 액젓 간을 하면 더 깊은 맛이 난다)
밥은 <기적의 집밥책>에서 본 레시피를 응용해서 다시마를 넣고 불린 쌀에 문어, 새우, 감자, 양파, 당근을 양념해서(간장. 미림. 참기름을 같은 비율로) 올려 밥솥에다 지었다.
최근 '이번 생도 잘 부탁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만약 나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여러 번 살았다 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하게 사는 일상을 사는 삶을 가장 살고 싶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곁에 있는 신랑과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오후에 동네 수영장에 다 같이 다녀와서 케이크도 먹고, 저녁엔 생일상까지 먹고 나니 배도 마음도 불러온다. 실컷 물놀이를 한 아이들은 일찌감치 곯아떨어졌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언제 이렇게 컸지?'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 후, 그리고 출산 후 나의 삶은 참 많이 변했다. 가끔씩 어떤 인연으로 우리가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건지 신기할 때가 있다.
돌아보니 몇 년 사이에 참 많은 일들과 성장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 등을 배려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마치 오늘의 맞춤형 생일상처럼 말이다.
저녁엔 문득, 예전에 부부 집단상담을 진행했을 때 준비했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부부
- 함민복 -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를 읽는데 함께 상을 들고 걷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보이는 것만 같다. 내게 많은 것을 맞춰왔을 신랑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