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게 글쓰기는 독백에 가까운 것이었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담기 위해, 여러 차원의 경험들을 소화시키기 위해, 나아가서 나를 알기 위해 쓴 글들은 내 삶의 궤적이자 비밀스러운 위안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썼던 수십 권이 넘는 다이어리와 노트, 몇 편의 소설이나 원고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서랍장 속에 쌓여있었다. 가끔씩 글들을 어딘가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블로그를 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인스타그램에서 긴 글은 어울리지 않아, 그나마 지인들이 있는 페이스북에 종종 단상들을 나누어왔다.
그러다가 인생 잡지 <치킨집>에 원고 요청을 받고, 주제에 맞는 분량 있는 글을 쓰게 되었다. 그 계기로 지난여름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써두었던 우울증과 그 이후의 경험들을 위주로 2권의 브런치 북을 만들었고,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상이나 요리, 가르치는 아이들과의 에피소드 등 몇 가지 주제로 글들을 정리했다. 한 편씩 차곡차곡 올리다 보니, 올해 안으로 100개의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글이 실린 잡지를 받았는데, 종이로 인쇄된 글을 받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인생 잡지 <치킨집>에 실린 브런치의 첫번째 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혼자 쓰는 글, 나의 배경을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만 공개되는 글, 불특정 다수가 읽는 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용기있게 풀어놓는 여러 작가분들을 통해 많은 위안과 힘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고자 하는 열망과 본능이 닿는 지점에서는 마음이 울컥하며 차올랐다.
어제는 한 출판사의 편집자분께 글에 대한 피드백도 받게 되었다. 글쓰기가 삶을 해석하고 해소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의 에피소드 안에서 잘 짜인 글을 전략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씀이 깊이 와닿았다. 그리고 반복적인 주제와 제한적인 어휘들이 되풀이되다 보면 생각이 기울어질 수도 있다는 말씀에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글쓰기는 내게 있어 더 이상 '독백'이 아닌 '대화'이다. 브런치에 들어올 때면, 마치 여행길을 떠날 때의 마음처럼,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지 설렌다. 1월부터는 오랫동안 들어가고 싶었던 글방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올 겨울에는 새로운 분야의 여러 책들도 읽어볼 계획이다.
오랫동안 고여있던 저수지와 같은 나의 세계에 물길이 나서 새로운 지류들이 흘러 들어오고, 흘러나가는 느낌이 든다.
"어떤 강물도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은 크고 풍부해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지류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계속 흘러가는 것, 그것이 강 하나를 만들 것이다.
- 니체"
좋아하는 니체의 글귀를 다시 찾아 꺼내 읽으면서, 받아들임과 흘러감을 통해 깊은 강물처럼 더 크고 풍부해질 나의 삶과 내면의 세계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를 통해 변화될 나의 글들도 기다려진다. 두려움 안에 갇혀있던 나만의 세계에서 문을 열고 한 발짝, 한 발짝씩 디디고 나오게 해 준 모든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