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제자와 함께 제인 구달 강연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함께 다녀온 제자는 여러 생명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기에 대화가 잘 통해 졸업 후에도 연락을 계속 이어갔었다. 독일에서 숲에 대한 공부도 하고 온 제자는 현재 숲 연구원이 되어서 숲을 연구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10여 년 만에 제인 구달 방한 소식과 다큐멘터리 시사회 소식을 듣고선 자연스럽게 그 사이의 궤적을 돌아보게 되었다. 중학생이었던 제자가 벌써 사회인이 되었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러 생명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제인구달의 책과 영상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 영향인지 둘째는 작년부터 해양생물학자가 꿈이라 하고 첫째는 얼마 전구터 동물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필름포럼에서 진행된 다큐멘터리 시사회와 GV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올해 89세가 되신 제인 구달님께서는 10년 전에 비해 체구가 많이 작아지시고 연로하신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최재천 교수님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시고 모든 질문을 경청하시며 답변해 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제인 구달과의 인연과 만남이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었다. 예술, 환경, 연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인 구달의 삶을 통해 배운 메시지들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에서 진실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중 습지를 보호하려 했는데 골프장이 들어선 것에 절망을 느끼고 제인 구달을 찾아간 청년의 사연이 기억난다. 그 청년에게 제인 구달은 당신의 이메일을 보여주시며 하루에도 전 세계에서 200개가 넘는 비슷한 상황의 이메일을 받으신다고 보여주신 뒤 그럼에도 함께 모인 사람들의 열정과 눈빛에서 희망을 보신다는 말씀에 여운이 많이 남았다.
질의응답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어떻게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요?"
라는 초등학생의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작은 일들 속에서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구매 등을 하는 것"
을 말씀하신 것과 그와 연관된 질문에서
"인간은 지능만이 아니라 지성을 가진 존재로 해결법을 찾아갈 수 있다."
는 대답을 해주신 것이 기억이 난다.
또한 어떤 반대 의견 등에 부딪혔을 때 논쟁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슴에 닿게 전달을 하시려고 한다는 말씀도 깊이 와닿았다.
어떤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함께 하라는 말씀도 여러 번 하셨는데 제인 구달이 설립한 Roots&Shoots라는 단체가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69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마지막 즈음에 여자 아이가
"처음 정글에 가셨을 때 침팬지가 먼저 다가왔나요?, 먼저 침팬지에게 다가가셨나요?"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처음 4개월 동안은 침팬지들이 내가 보이면 도망가기 바빴는데 David greatbeard라고 이름 붙인 침팬지가 경계를 푼 덕분에, 가까이서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해 먹잇감을 먹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는 말씀에서 포기하지 않고 거리를 좁히려고 하셨던 열정과 진실함이 느껴졌다.
또한 침팬지 연구를 통해 침팬지 또한 사람처럼 개성과 마음과 감정이 있는 것을 발견하시고 그에 맞는 이름을 붙이신 것과 침팬지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자세히 관찰할수록 많은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다."
라는 말씀에서도 깊은 공감이 갔다.
또한 우리 등에 갇혀있는 동물들에 대해서 그들도 우리처럼 스스로 즐겁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과 식물 위주 식단을 하는 것이 내 몸과 지구와 다른 동물들을 위하는 것이라는 말씀에서도 다른 생명을 동등하게 대하고 존중하는 태도나 실천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당신 자신을 꿈과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신 건데,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말처럼 때론 표범 등 두려운 것들이 있었음에도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꿈이었기에 연구를 계속하실 수 있었다는 말씀이 집에 오는 내내 여운으로 울려 퍼졌다.
두려움을 넘어 꿈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계속 나아가는 그 힘과 헌신과 열정이 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마음에도 전해지고, 그들의 삶을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희망이 되는 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보다 나은, 선한 세상을 위한 꿈을 품고 교육을 하고 있지만 때때로 절망감에 부딪히곤 하는데, 그때마다 오늘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내가 느꼈던 마음을 잘 전하고 싶기도 하다.
내일은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대규모 강연이 있을 예정이라 들었고, 이번에 DMZ에 관련한 일도 하실 것이라고 들었는데, 아무쪼록 제인 구달님께서 건강히 한국에서의 일정을 잘 마치시며 많은 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은 널리 퍼뜨려주시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