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부터 많은 전시와 공연들을 찾아다녔다. 예술을 통해 나와 내 삶을 비추고 돌아보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좋은 전시를 다녀올 때면 마치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술가들은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보며 새로운 눈과 세계를 열어주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지난주엔 둘째의 어린이집 상담을 마치고 일찍 하원한 둘째와 함께 좋아하는 미술관을 다녀왔다. 결혼 전 인도와 네팔 지역을 여러 번 여행해서인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있는 제목이 시선을 끌었던 전시었다.
아이와 함께 전시실로 들어가자 높은 천장이 있는 공간에 음악이 울려 퍼졌다. 신비로운 음악만으로도 이미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 드는데 솟아있는 하얀 탑 같은 것이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피자 세이버로 쌓은 조형물이었다! 기둥처럼 솟아있는 구조물 사이로 난 길로 들어가도 된다고 하자 아이가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몇 번 오고 가더니 바닥에 깔린 하얀 모래에 관심을 보인다.
한 쪽에는 원형의 구조물이 있는데 이 구조물은 해체 예정이라 고정하지 않으셨다고 해서 닿지 않게 매우 조심해서 감상했다.
다른 한편엔 피자 세이버로 만든 종유석도 있었고 다른 구조물도 있었는데, 작가님께서 직접 설명도 해주시고 아이가 만져보게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뜨리무리띠(Trimuriti)'라는 전시 제목은 머리가 셋 달린 신인데,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 유지의 신인 '비슈누', 파괴의 신인 '쉬바'가 한 몸에 있는 형상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피자 세이버로 '창조-유지-파괴'의 과정을 작품과 퍼포먼스로 표현하고, '과거-현재-미래' 속에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비춰준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전시를 보며, 모여지고 흩어지는 우리의 삶이 선명하게 느껴졌고, '과거-현재-미래'가 일직선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 안에 모두 있다는 말 등이 기억났다.
두 번째 전시장을 문을 여는 순간 처음 느껴지는 것은 향이었다. 전시장 바닥에 깔린 바이오차에서는 마치 깊고 오래된 숲에서의 향이 나는 듯했다. 그 위에는 검은 나무들이 거꾸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숲'이라는 글자에서 사람(人)이 하나(一)씩 서(立)있는 세 개의 한자를 보시곤 작업을 하셨다는 말씀이 무척 와닿았다.
한 전시장은 새하얗게, 한 전시장은 시커멓게 마치 낮과 밤처럼, 삶과 죽음처럼 대조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미술관을 나서며 아이가
"미술관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라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주말엔 신랑과 첫째까지 모두 가서 관람을 했다. 다시 봐도 너무나 좋았다.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굿즈도 구매했다. 이런 좋은 전시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작은 힘과 응원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99개 한정이라고 하는데 전시 기간 내에 모두 잘 팔리면 좋겠다.
그동안 그림에 비해 조소 작업은 다소 어렵다 느꼈는데, 이번 전시는 여러 면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아쉽게도 해체 퍼포먼스가 있는 7월 21일 오후 3시에는 수업이 있어 가지 못하지만 이 글을 보는 분들께 정말 강추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