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지 않는 사람들

by 달리아

새로운 곳에 와서 느낀 것은, 공간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곳은 늘 빠르고 급박하게 모든 것이 변했다면 티베트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다람살라라는 공간에는 시간이 천천히, 여유롭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 느낀 것은 문화에 따라 다른 존재들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었는데,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순수한 웃음과 친절한 태도가 몸에 베여있는 듯했다. 달라이라마의 강의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항상 상대를 배려하며 낯선 이들에게도 경계없이 과자와 차를 건네주는 티베트 사람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을 만날 때,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계산하고, 판단해왔던 나에게, 대가 없이 친절을 베푸는 것, 처음 본 사람을 가족처럼 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중국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험난한 피난길을 거쳐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 자리를 잡아 살고 있었다. 상황만 봐서는 내가 그들의 나라 잃은 아픔을 위로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의 넉넉한 웃음이 나를 위로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망명자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웃음과 평화가 가득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굳어있었던 나의 얼굴과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열리게 해 주었고, 맑은 웃음에 덩달아 나도 자주 웃게 되었다.




하지만 명상센터에서 만난 빼마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티베트에서 인도로 넘어오는 여정에서 들키지 않기 위해 험한 산길을 밤에 오르느라 생사를 오간 사람들, 설산의 눈과 추위로 동상에 걸려 잘려나간 신체의 부위들, 식량도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에서 기도로 버티며 떠나왔던 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은 중국인들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 생겨 그녀에게 물었다.


"빼마는 중국 사람들이 안 미워?"

나의 질문에 빼마는 손을 내밀어 휘휘 저어 보였다.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아.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와 욕망이지. 그래서 달라이라마도 늘 우리에게 중국인과 중국을 미워하지 말라고 가르치셔. 오히려 그런 그들에게 연민과 자비를 느끼고, 그들이 무지와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이야."

빼마의 말을 듣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과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던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떠올랐다. 생각에 잠긴 나에게 빼마는 다시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분노의 씨앗을 심은 곳에는 분노의 열매가 열리고, 사랑의 씨앗을 심은 곳에는 사랑의 열매가 열리지. 만약 우리가 중국인들을 증오하게 된다면, 그건 또 다른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씨앗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야.

이것이 바로 인과의 법칙이야. 그 법칙에는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거든."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 조금 전에 네 말을 듣고 중국인들에 대한 미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어쩌지?"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빼마는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대답을 했다.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하면서 다시는 그런 마음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되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욕망과 화와 무지의 씨앗과 뿌리는 뽑고, 사랑과 자비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거야. 그것 역시 인과와 까르마의 법칙이지."

평범하게만 보였던, 내 눈앞의 조그마한 티베트 여인이 매우 큰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는, 눈앞의 현상이나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그에 따라 일희일비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에 안 들거나 싫은 사람도 있었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미웠다. 무엇보다 우울증을 앓을 때엔 나 자신이 너무 못마땅하고 미웠다.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우울증은 자신에 대한 공격성'이라고 표현한 것에 공감이 되었다. 우울함은 자기를 탓하고 괴롭히는 자책감, 죄책감과도 매우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티베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나는 그들의 언어에 '자책감, 죄책감'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미워하고 탓한다는 개념을 매우 생소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환생을 믿는 티베트의 문화권에서, 그들이 모든 존재들을 나를 사랑으로 길러 준 전생의 어머니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여기며 작은 벌레나 생명조차 소중히 대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은 평화와 행복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믿고, 보았던 세상들에 틈이 생기며, 새로운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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