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친해지기

by 달리아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길은 나의 안으로 향해있었다. 티베트 사람들의 순수함과 친절함과 행복한 모습이 궁금했던 나는 근처에 명상 센터들을 다니며, 그 비법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명상을 '곰'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마음과 친해지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전까지 외부의 사람들이나 물건 등에는 늘 관심이 있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잘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ibetan Elephant Taming Picture Series (terebess.hu)


명상센터 한편에 그려져 있는 이 그림에서는 마음을 길들이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그림의 아래 부분에서 보이는 것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원숭이처럼 부산스럽고, 성난 코끼리처럼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하지만 마음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명상을 통해서 더 이상 그런 마음에 끌려다니지 않게 된다. 대신 그림 윗부분의 하얀 코끼리를 올라탄 사람처럼, 깨끗해진 마음을 제대로 쓰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할 때 숨을 바라보는 이유는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며 길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숨은 24시간 쉬지 않고 쉬기 때문에 언제든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며, 현재에만 늘 쉴 수 있는 것이라서 마음이 과거와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말에도 '숨이 막힌다. 숨이 뚫린다. 숨이 가쁘다. 숨을 돌린다.' 등 숨에 대한 표현들이 많은데, 숨은 우리의 마음, 특히 감정에 따라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거칠어지기도,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내가 화가 났을 때의 숨과 편안히 쉬고 있을 때의 숨을 떠올려보면 쉽게 비교가 될 것이다. 이처럼 숨은 마음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아래의 시를 읽으며, 숨은 마음의 파도에도 나를 잡아주는 닻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파도가 없는 날

배는 닻의 존재를 잊기도 하지만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배가 흔들릴수록 꽉 잡아주는 닻밥


- 함민복, '닻' 中




숨을 바라보거나 집중하기가 어렵다면, 숫자를 세기도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하나', 다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둘' 이렇게 숫자를 '1-10' 정도까지 세고, 다시 1로 돌아와 수를 세는 것이다. 이 외에도 들려오는 소리나 입으로 내는 소리 등에 집중을 하는 방법,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방법, 그림을 그리듯 구체적인 상상을 하는 방법 등 여러 집중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한 가지 대상에 집중을 하는 능력이 커지면,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자각하고 관찰하는 힘도 커진다.


관찰하는 힘이 커지다 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슬프다"

라는 표현처럼 내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나'라고, '내 것'이라고 동일시해서 갇히기보다는,

'○○한 생각, 느낌, 감정이 일어났으며,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사라질 것이다'라고 모든 것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바라보는 힘을 키우게 되면 일어나는 것들에 휘둘리고 휘청거리는 것을 멈출 수 있게 된다.


'우울'이라는 감정과 좋지 않았던 기억들에 오래도록 갇혀 살던 나에게 이러한 연습들은 내가 묶여있던 것들에서 풀려나게 해주는 방법이 되어주었다. 이는 더 이상 성난 코끼리에게 밟히듯 나를 아프게 하고 파괴하는 생각과 감정들에 끌려다니는 노예가 아니라, 내 마음의 친구가 되어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했다.


나는, 기꺼이, 내 마음의 친구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