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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입학시키는 마음

더 나아지는 날들을 축하하며

by 달리아

내 생일은 경칩이다. 경칩이라는 절기의 의미를 지식백과에 찾아봤더니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라고 한다. 생일날인 오늘, 아직 모든 생명들이 잠들어있는 것만 같은 짙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절에서 명상을 하던 때에 새벽 3, 4시경 들려왔던 도량석 목탁소리를 듣고 깼을 때처럼 정신이 맑고, 선명하다.


어제는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태어났을 때 팔꿈치를 구부려 안아도 공간이 남았던 작은 아이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학교에 들어선다. 아이를 품고, 안고, 업고, 달래고, 어르며 키워왔던 지난 7여 년 간의 시간들이 영화의 중요장면들을 모은 영상처럼 지나간다.

산후조리원에서 축하 선물들과 찍은 사진

입학식이 진행되는 강당 안에는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부모님들과 조부모님들이 자리를 메운다. 저출산 시대라고 하지만 아이들을 축하하는 마음들로 강당 안이 가득 찬 느낌이다. 어딘가 들뜨고 어딘가 애틋한 얼굴들의 조각에서 나의 표정들이 비친다.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법을 몰라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아이들, 처음 교가를 듣고 어리둥절한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일어났다 지나간다. 아직 초등학생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엉성한 모습이다. 이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에 하나씩 적응해갈 생각을 하니 벌써 기특하고도 뿌듯한 마음이 든다.

아이가 신생아에서 영아에서 어린이가 되는 동안 나 역시 여러 번의 통과의례를 거친 것만 같다. 작디작은 아이를 안는 것조차 낯설어 허둥지둥하고, 아이가 깊이 잘 때는 숨을 쉬는 건지 아이를 코끝에 귀를 데고 확인을 하곤 했던 초보 엄마는 여러 번의 거듭남을 통해 매일, 매일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 됨됨이, 엄마 됨됨이...


삶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고,

사람도 엄마도 완벽하진 않지만 되어가는 과정 중이라 여기면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지난 삶을 뒤돌아보니,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까지 여러 도움을 주었던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 함께해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느껴진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나는 이 세상의 많은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 거대한 인연들의 그물망 속에서 나는 보호받고, 지지받고, 사랑받으며 살아오고 있다. 때때로 여러 고통들 속에서 나는 절망했고, 우울했고, 아파했으나, 그로 인해 나는 더 성장해 왔고, 성숙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거듭나며 살아갈 것이다.


생일 즈음이면 오래전 읽었던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서 호주의 원주민들이 태어난 날이 아닌 더 나아지는 날을 기념한다는 것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 부족하고, 미숙한 부분들도 많지만, 그러기에 더 나아질 부분도 많다. 그러기에 지나온 날들보다 나아갈 날들을 바라보게 된다. 남은 생동안 나날이 나아질 날들이 기대가 되고, 기다려진다.


오랜만에 긴 글을 쓰다 보니, 그 사이 창밖의 채도가 점차적으로 옅어진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 것만 같다. 세상이 밝아지며, 만물이 깨어나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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