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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생신상을 차리며

by 달리아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3월의 어느 날, 엄마의 생신을 함께 축하드렸다. 두 분을 초대드리고서, 아이들과 엄마가 좋아하시는 보라색 꽃다발도 함께 고르며 절로 행복한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일을 마치고선 미리 장을 봐둔 소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서 미역국을 끓이고, 압력솥으로 갈비찜을 하고 굴비를 구웠다. 신랑은 퇴근길에 꽃을 담은 예쁜 케이크를 사서 왔다. 그렇게 차리고 나니, 외식이 부럽지 않은 풍성한 한상이 완성되어 모두가 배부르게 생일상을 나눠먹었다.

기뻐하시는 두 분을 보고있으니,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부부로 살아가시며 고난 속에서도 가정을 잘 지켜와 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두 분은 내 삶의 땅이자 뿌리임을 느낀다.


최근에는 예전에 가족 세우기라는 가족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듣고 말했던 치유의 언어가 자주 떠오른다.


"당신은 크고, 나는 작습니다."
"나는 당신이 주는 사랑을 받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사랑은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 흐름이 막히거나 끊길 때는 고통이 일어난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깊은 우울증을 겪으며, 나는 마치 섬세한 배수공이 된 것처럼, 막혀있던 사랑의 길을 찾아내어 다시 뚫고, 사랑이 새어나가던 구멍들은 막아왔던 것 같다.


그런 길고 지난한 치유의 여정 속에서, 해마다 나는 내 안의 철저히 버림받은 듯한 고립감, 온 세상이 흔들리는 것만 불안, 건강하지 못한 인간관계 등으로 생기는 고통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마치 허물을 벗는 뱀이나 번데기를 뚫고 나온 나비처럼 나는 고통의 껍질을 벗어내며 성장해오고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중력처럼 무겁게 나를 끌어당기던 고통의 원인과 습관의 관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제야 비로소 삶은 가볍고, 즐거운 춤이 된다.


*


부모님과의 관계는 오랫동안 나의 숙제였고, 그만큼 부모님은 내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치유와 성장의 여정 속에서 나는 때론 두 분을 미워하기도, 원망하기도 했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과거의 상처들이 헤집어진 날이면, 숨이 막히며 죽을 것만 같은 아픔이 밀려왔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울면서 당신의 과오를 사과를 하신 적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과를 받고도 내 마음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현실에서의 실제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만들었던 내 안의 부모님을 만나 화해를 했다. 그제야 나는 완벽하지 않고, 미숙한 어른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오셨던 두 분을 진정으로 안을 수 있었다. 포옹이 깊어지는 만큼 내 안의 힘과 자원들이 서로 손을 잡듯 연결이 되고 통합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면, 모든 치유의 여정은 나가 바랐던 이상적인 부모님처럼 항상 따뜻하고 친절하게 내 자신을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힘과 태도를 길러주는 과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는 스물이 훌쩍 넘어 마흔이 된 이제야 나는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가정을 이루어 아이들에게 내가 받아온 아낌없는 사랑을 흘려보내는 엄마로 더 굳건히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내가 신체적, 정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온전히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늘 내 곁을 지켜주셨던 부모님,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몸도 작아지신 부모님... 내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나는 두 분의 아이라는 변함없는 사실이 내게 안도감과 안정감을 준다.


내게 땅 같고, 하늘 같은 두 분이 더 건강히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두 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남은 생동안 그 사랑을 충분히 누리고, 담아, 잘 전하며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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